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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술병·쓰레기로 뒤덮인 '음주청정지역'

'집중단속' 선언 첫날 경의선숲길공원 가보니…

여기저기 술판에다 제도 시행 사실조차 몰라

서울시 홍보부족에다 단속기준 애매해 실효성 의문

지난 1일 찾은 경의선숲길공원에 ‘음주청정지역’ 시행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장아람기자




지난 1일 오후 4시에 찾아간 서울시 경의선 숲길 공원.

홍대입구역에서 이어지는 공원 입구에는 ‘우리 공원은 2018년 1월1일부터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 운영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서울시는 ‘음주청정지역’ 제도를 올해 1월 도입한 뒤 3개월간의 계도 기간을 거쳐 이날부터 집중 단속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집중단속’이라는 엄포가 무색하게 공원 곳곳에서는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두워지면서 공원 쓰레기통은 술병과 쓰레기들로 뒤덮였고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2인 1조의 단속반은 공원을 둘러보면서도 평소처럼 무단 길거리 공연 등만 단속할 뿐 음주자들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례 내용에 대한 계도조차 없었다. 공원에서 만난 직장인 김진욱(31)씨는 “그런 조례가 있는지도 몰랐다”며 “공원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은 마시고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시가 올바른 음주문화 정착을 위해 만들었다는 ‘음주청정지역’은 시행 첫날부터 유명무실화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는 당초부터 예상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음주 자체가 금지된 게 아닌 탓에 단속 기준이 애매한데다 홍보까지 부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시의 조례 제정에도 상위법에 관련 규정도 없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4월 ‘서울특별시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안’을 의결하고 서울숲·남산·월드컵공원 등 직영 공원 22곳을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했다. ‘술을 마신 뒤 심한 소음 또는 악취가 나게 하는 등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조례는 만들어졌지만 홍보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계도 기간에 현수막과 공원 내 안내방송을 한 게 거의 전부다. 서울시도 홍보 부족을 인정하고 있다. 박종수 서울시 건강증진국 주무관은 “관련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고 이화여대 절주 동아리 ‘HEWA’와 연계해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공원 내 음주 자체가 금지되는 게 아닌 데다 어느 정도의 소음·악취가 과태료 대상인지 정해지지 않아 실질적인 단속이 이뤄질 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공원 근처에 거주한다는 최정화(36) 씨는 “공원에서 조용히 술을 먹거나 남들 눈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 단속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는 조례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과태료 부과 근거가 모호하다 보니 일선 단속반도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경의선 숲길공원을 관리하는 서부공원녹지사업소 관계자는 이날 “(상부로부터) 집중 단속에 대해 들은 것이 없다”며 “단속한다 해도 사실상 조례 전에 해오던 계도에 그칠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시도 할 말은 있다. 국민건강증진법에 금주 구역을 지정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보니 명확한 조례 기준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례는 상위법에 관련 규정이 있어야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다. 박 주무관은 “단속 기준과 조항을 마련하기 위해 조례 의결 때부터 국회에 법 개정을 요청했지만 아직 답이 없다”며 “법률 개정 때까지는 계도 위주로 하면서 심한 경우에만 단속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시는 단속 근거로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 49조 1항 3호를 들고 있다. 이 법률은 누구든지 도시공원 또는 녹지에서 심한 소음 또는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할 경우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게 된다고 규정한다. ‘음주청정지역’ 조례를 시행하면서 다른 상위 법률을 근거로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 외에 전국 광역·기초지자체 51곳(2017년 기준)이 금주구역 조례를 지정해두고 있지만 비슷한 문제에 봉착해 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음주문화 개선 및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상위법을 개정해 더 강력한 규제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캐나다, 싱가포르 등 선진국들은 공공장소인 경우 아예 주류 개봉을 금지하거나 야간시간 음주 행위, 주류 판매 자체를 금지하는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가 생활 밀착형 규제에 대해서는 더 자율성을 갖도록 지방자치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는 시민들의 자잘한 일상 생활까지 신경을 쓰기가 어렵다”며 “음주청정구역 지정과 같은 일도 지자체에서 할 수 없다면 지방자치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무리”라고 말했다. /이종호기자·장아람인턴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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