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케어’로 불리는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아프거나 다친 사람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가령 병원 진료 과정에서 자기공명영상(MRI) 검사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수십만 원의 비용을 지금과 같이 모두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경우라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검사 기회를 포기하거나 미루게 돼 적절한 진단과 치료 기회까지 제한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돈 때문에 진료를 받을지 말지 선택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도록 환자와 가족의 건강권 보장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이다. 아픈 것도 고통스러운데 돈이 없어 치료받는 것도 어려워한다면 어떻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2015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63.4%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100만원의 의료비가 청구됐다면 64만원은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고 환자 개인이 36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정부가 계획한 대로 비급여의 급여화를 통해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급여 항목을 늘려 지금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70% 수준으로 올린다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30만원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본인부담상한제도 함께 추진해 소득 구간에 따라 상한액 구간을 여러 개로 나눌 수 있다. 다층화하고 계층별로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해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의 무게를 조금 더 덜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정도의 보장성 강화 목표 수준에 도달한다고 대한의사협회의 비판과 같이 획기적인 변화의 계기가 되기는 어렵다. 다만 기대하는 바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80% 정도의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0년 이상 65%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고 선진국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의사협회가 집단행동까지 예고하며 비판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어떤 정책인지 제대로 알기 전에 혹시 국민들에게 잘못 인식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의사협회 외에 다른 의료인들과 병원협회 그리고 환자단체나 시민단체들 대다수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기대감을 갖고 있고 계획대로 추진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재인케어의 핵심은 국민의 의료비 경감과 의료 접근성 확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의료계의 협조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정부는 여러 번의 회의로 의료계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고 한다.
누구의 목소리를 경청할 것인가.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여 앞으로 국민들이 아프거나 다치게 되는 경우 의료비 걱정을 하지 않고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지 소상하게 알려야 한다. 아이들과 노인 그리고 장애인과 여성과 같이 취약한 대상자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어떤 정책이 추진되는지 국민들의 알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중증 환자는 대형병원에 가고 만성 질환자는 동네병원을 찾도록 하는 의료 전달 시스템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미국이 부러워하는 사회보험이다. 이 같은 건강보험 시스템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아픈데 돈이 없어 치료를 고민하는 국민이 없도록 하는 정책 방향을 반대하는 국민들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건강권은 인간이 부여받은 인권의 바탕이며 근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돈이 있고 없음에 따라 건강할 수 있는 권리가 달라진다면 사회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건강보험은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형평성의 관점에서 국민의 건강권이 보장될 수 있어야 하며 대다수의 국민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대해 어떤 의견인지 경청할 것을 요청한다. 원해서 아프거나 다치는 사람은 없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질병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건강보험의 연대성을 기반으로 보장성을 높여나가는 방향으로 함께 갈 수 있다면 대한민국에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허윤정 아주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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