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조사기관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매년 전 세계 167개국을 대상으로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한다.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정부의 기능성, 정치 참여, 정치 문화, 시민자유 등 5개 부문으로 나눠 평가한다. 2017년 민주주의 지수 1위는 10점 만점에 9.87점을 받은 노르웨이였다. 2위는 아이슬란드(9.58점), 3위는 스웨덴(9.39점)이었다. 대한민국은 8.0점을 받아 아시아 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20위)를 기록하며 ‘온전한(full) 민주주의’ 국가의 대열에 들어섰다.
한국은 2016년 평가에서 7.92점(24위)으로 ‘결함 있는(flawed) 민주주의’에 속했지만 4단계 상승했다.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한가를 평가하는 ‘선거 과정 및 다원주의(9.17점)’는 다른 항목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동안 ‘온전한 민주주의’로 선정된 미국이 2017년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한 단계 후퇴한 것과 비교해보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자긍심마저 갖게 된다. 촛불 민주주의로 탄생한 현 정부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발생한 ‘민주당원 김씨(필명 드루킹) 댓글 조작’ 의혹 사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자긍심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드루킹은 사조직을 만들어 인터넷 여론을 조작했고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이 ‘개인적 일탈 행위’인지 아니면 ‘정치권이 개입된 여론 조작’인지, 수십억원에 달하는 드루킹 조직 운영 자금이 어떻게 조성됐는지는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사법적 판단을 넘어 드루킹 댓글 파동은 세 가지 관점에서 조명해볼 수 있다. 첫째, 한국 선거에서는 댓글 조작을 통한 여론 왜곡이 왜 빈번하게 일어나는가. 인터넷 뉴스 유통구조가 독점화돼 있고 2,000~3,000명의 극소수가 온라인 여론을 장악하면서 자극적인 댓글로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추지 틀 이론(information shortcut theory)’에 따르면 유권자는 제한된 정보를 갖고 확신에 차서 행동한다. 가령 사람들은 포털에 올라온 뉴스 기사를 읽을 때 본문보다 댓글에 먼저 반응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기사를 볼 때 기사 제목을 보고 댓글을 보고 댓글 반응을 보고 나서 다시 기사를 본다. 댓글이 인터넷 여론을 형성하고 이렇게 형성된 여론은 여론조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권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둘째, 인터넷 선거 운동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나. 중앙선관위는 지난 2012년 1월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상시 허용하기로 했다. 인터넷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표현과 선거운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한정 위헌 판결을 내린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하지만 이번 드루킹 사건처럼 광범위하게 허용된 온라인 선거운동이 여론조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인터넷상에서 특정인에 대한 조직적 지지나 반대 활동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인터넷 선거운동이 불법이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조작은 유권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줘 선거 민주주의를 훼손시킬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셋째.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댓글 조작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있다면 대책은 무엇인지다. 선거판에는 드루킹 같은 브로커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불법 댓글 공작의 유혹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시급히 ‘드루킹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 구글과 같은 해외 주요 검색 사이트들은 대부분 검색 기능에만 집중하지 댓글을 못 단다. 현재의 댓글 서비스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을 통해 댓글을 달려면 포털사이트가 아닌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에 달도록 해야 한다. 또한 최종 댓글을 달 수 있는 여부와 실명제 채택 여부는 해당 언론사가 제공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단언컨대 왜곡되지 않는 정보가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이끌고 더 좋은 온전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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