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24일 풍계리 핵시설 폐쇄 등 최근 북한이 취한 조치가 과거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아산플래넘 2018’ 참석 차 한국을 찾은 그는 “한국에 도착한 지 8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워싱턴DC와는 다른 설렘과 흥분이 느껴진다”면서도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차 석좌는 이날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와 주한미군 주둔 용인 발언을 일단 환영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과거의 남북관계를 돌아봤을 때 현재 나타나는 양상들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수십 년간 대북 문제를 다뤄온 차 석좌의 경험상 북한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국가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 충분히 신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면서 “영변 원자로를 폐쇄한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고 보다 확실한 증거를 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특히 차 석좌는 평화협정과 평화체제 논의가 지나치게 빨리 시작된 데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 모두 평화 조약이나 체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면서 “통상 평화협정 등은 협상 마지막 단계에서 나오지만 이번에는 너무 빨리 언급돼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높아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평화협정 문제는 단순히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라는 것이 차 석좌의 설명이다. 그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문제가 해결돼야 하고 정전협정 서명국인 중국의 동의도 필요하다”며 “이 외에도 일본과의 관계 등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비핵화 선언 또는 평화 선언이 나온다고 해도 디테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차 석좌는 제안했다. 그는 “실제로 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초 작업이 중요하다”면서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정상들이 만나 대담한 평화·비핵화 선언을 한다고 좋은 결과가 나올 수는 없으며 과거 대북협상 과정에서 문제점이 생기거나 교착 상태에 빠진 경험을 살펴보면 항상 디테일에 악마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차 석좌는 이어 “전략 없는 정상회담이 진행돼서는 안 된다”며 “정상회담 이후 대북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북한이 핵을 유지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인지 등 정상회담이 성공했을 때와 실패했을 때의 전략이 모두 미리 준비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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