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세 번째로 열리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이전과 내용과 성격에서 판이하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차 정상회담과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 간 2차 회담의 핵심의제는 남북교류와 협력이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보다 남북 간 평화 정착을 위한 여건 조성에 주력하는 접근이었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한반도 긴장의 근원인 비핵화와 종전 선언,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지상과제를 논하는 자리다. 게다가 북핵 문제를 담판 지으려는 북미 정상회담의 예비회담 성격도 있다. 형식은 남북 대화지만 실질적으로는 남북미 3국이 얽혀 있는 구도다. 문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 간 만남을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역사적 회담 또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 이벤트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담 전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북한은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가 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했고 핵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풍계리 실험장 폐기도 결정했다. 예상치 못한 ‘핵 동결’ 선언으로 남북·북미 정상회담 앞에 놓였던 큰 걸림돌 하나가 제거됐다. 미국의 반응은 신중하지만 우호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매우 좋은 논의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고 김 위원장에 대해서도 “매우 훌륭하다”고 극찬했다. 북한을 ‘깡패 나라’, 김 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으로 불렀던 것과 180도 달라진 표현이다.
하지만 낙관은 이르다. 이번 회담의 최우선과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지만 우리는 아직 그들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비핵화를 위한 요구조건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과거 수많은 회담과 선언·합의가 있었지만 그 결말이 어땠는지도 잘 알고 있다. 이번에는 과거와 달라야만 한다. 만에 하나 이번 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목적이 일시적 위기 모면을 위한 것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판단하고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할 게 분명하다. 두 정상의 만남이 낭떠러지에 둘러싸인 절벽 위에서 이뤄지는 형국이다. 단 한 발짝이라도 잘못 내딛는다면 곧바로 추락이다. 합의에 실패해서도 안 되고 차선의 합의를 이뤄서도 안 된다. 최선의 결과만이 한반도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분명하게 확인하고 구체적인 답을 끄집어내야 한다. 북한이 어느 정도까지 핵을 폐기할지, 체제안전 보장에 대한 요구사항은 무엇인지를 김 위원장의 입을 통해 분명히 들어야 한다.
섣불리 경제협력 방안을 제시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끌 때까지 최대 압박과 제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수없이 확인했다. 대북제재 완화는 북미대화의 결과로 나타나야 할 사안이지 남북 합의로 이뤄질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북미 관계 개선을 뛰어넘어 남북이 달린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은 물론 한미동맹에도 균열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대북제재 완화를 북미 정상회담 몫으로 돌려야 하는 이유다.
이제 문 대통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얼굴을 붉히는 한이 있더라도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 없이는 대북 제재 해제도, 미국의 체제 보장도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설득하고 공동선언문 제일 윗줄에 ‘완전한 비핵화’를 위치시켜야 한다. 어렵게 잡은 마지막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평화공존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하는 문 대통령의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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