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의 성패는 향후 한반도뿐 아니라 주변국들의 경제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하고 이를 실천할 경우 그 이행 실적에 상응해 순차적으로 대북경제 제재가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새로운 신산업기지 구축 및 새 물류길 개척을 원하는 모든 국가들에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경제협력 문제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공식 의제로 오르지는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축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경제 문제를 공식 의제로 인정했다가는 자칫 북한이 핵 동결 및 폐기 협상을 빌미로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며 자국에 대한 국제적 제재와 압박에 구멍을 낼 수 있다. 따라서 경협 문제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과 이어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에 합의한 후에나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1차 회담에서 해당 합의가 이뤄지면 이르면 하반기에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열어 남북경협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유력시된다. 또한 4자(남·북·미·중) 또는 6자(남·북·미·중·일·러) 회담을 통해 대북제재 완화 및 투자·협력문제를 다룰 수도 있다.
북한이 핵 포기의 길로 나갈 경우 우리 정부가 추진할 경협의 청사진은 이미 제시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국정운영 목표로 삼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다. 신경제지도의 핵심 사업은 3대 벨트 프로젝트다. 3대 벨트란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서해안 산업·물류·교통벨트, 비무장지대(DMZ) 환경·관광벨트다.
이중 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는 남북이 함께 금강산에서부터 원산·단천, 청진·나선에 이르는 공동개발사업을 추진한 뒤 한반도 동해안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러시아 천연가스와 원유개발 및 한반도 공급, 북한 지하자원개발 등이 해당 프로젝트의 주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해당 자원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해상과 육상에서 수송 인프라 구축이 수반될 수도 있다. 좀 더 크게 보자면 우리 정부가 신북방정책 차원에서 러시아와 공동으로 추진하려는 북극항로 개척 사업과도 맥이 닿을 여지가 있다는 게 해운과 조선업계의 관측이다. 남·북·러가 함께 추진하려다 사실상 멈춰선 나진·하산프로젝트도 넓게 보면 에너지벨트와 연계될 수 있다.
서해안 산업·물류·교통벨트는 남한의 수도권에서 시작해 북한의 개성공단, 평양·남포, 신의주를 잇는 구상이다. 남한의 첨단산업력과 북한 내 양질의 노동력 및 산업입지를 활용해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경의선과 같은 철도노선 등을 대륙으로 이어 수출의 신활로를 트는 상생 전략이다. 해당 사업이 합의될 경우 우선 우리 기업들이 전면 철수한 개성공단 1단계 사업을 복원하고 지난 2007년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개성공단 2단계 사업 및 배후주거지역 개발 프로젝트가 재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1단계 사업이 주로 경공업 분야의 중소기업 입주 위주였다면 2단계부터는 중공업 등 첨단산업을 기반으로 중견 및 대기업이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DMZ환경·관광벨트는 설악산을 시작점으로 해서 금강산과 원산·백두산을 잇는 관광사업축과 DMZ 일대를 생태 및 평화안보관광지구로 개발하는 또 다른 관광사업축으로 구성된다. 그 첫 신호탄은 중단된 금강산 사업의 재개가 될 것이라는 게 경협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부는 3개 벨트사업은 별도로 남북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지정해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거나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를 추진해 해양자원의 공동개발 및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이 밖에도 해주경제특구나 남북 및 대륙을 잇는 고속철도사업, 남북과 중국, 몽골, 러시아, 일본 등 동북아의 전력망을 잇는 슈퍼스마트그리드사업 등도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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