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4·27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으면서 동북아시아 정세에도 일대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 회담을 통해 65년간의 정전체제에 마침표를 찍는 종전 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에 성큼 다가설 것으로 관측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팽팽한 대립과 긴장이 이어져온 국제정치 구도에 극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문을 확실히 열어야 한다는 점에서 4·27 정상회담은 앞으로 전개될 여정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북한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본게임’은 오는 5~6월 사이에 열리게 될 북미 정상회담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필두로 작성될 4·27 합의문도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의 비핵화 협상이 성공해야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청와대가 다음달 중순께 문 대통령의 방미 계획을 밝힌 것도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토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내야만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에 새 시대를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북한 비핵화를 핵심 의제로 다루게 될 것이라는 데는 각국 외교가의 전문가들 사이에도 이견이 없다. 이 가운데 협상의 종착역이 될 비핵화만큼은 남북이 아닌 북미 간 담판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짙다. 애초에 북측이 대화의 길로 나선 것도 트럼프 미 행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가능한 모든 대북제재를 동원하며 ‘최대의 압박’을 가한 것이 배경이 됐다. 미국이 주도한 전방위 포위망에 갇힌 북한이 비핵화를 고리로 이를 풀기 위해 미국의 대화 카드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들 3대 이슈는 서로 맞물려 있지만 미국이 상정하는 첫 단추는 비핵화다. 이 때문에 남북이 먼저 관계 개선과 평화체제에 속도를 내면 비핵화 논의에 혼선을 빚을 우려가 제기된다. 이 같은 리스크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최측근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를 북한에 보내 김 위원장을 직접 면담하게 해 북측의 비핵화 의지를 떠본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북측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위한 시간 끌기를 시도하거나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외교적 압박의 숨통을 틔우려는 의도를 경계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정상 간의 ‘빅딜’을 통해 이행 과정을 최대한 압축시키려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랭크 엄 미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남북 정상회담의 중요도는 북미 정상회담에 최종 결정권이 있다는 점에서 제한된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결정의 가장 큰 잠재력은 북미 정상회담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가 최종적인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굳건한 공조가 필수적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4일 급거 방미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만난 것이나 다음달 중순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미를 설명하고 북미 회담의 방향 조율에 나서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북측의 비핵화 의지를 신뢰해야 종전 선언과 남북 경협 재개 등에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의 한 고위관계자는 “남북 간 교류 확대나 경협은 현행 대북제재 아래에서는 막혀 있다” 면서 “일시적으로 풀려고 해도 제재를 주도한 미국 측의 허용이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대북 이슈를 포괄적·단계적으로 풀려는 우리 정부와 ‘완전한 비핵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 간 갈등의 여지도 배제할 수는 없다. 토마스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은 “동결이 아닌 북한의 완전한 핵 폐기를 끌어내는 것은 여전히 큰 도전”이라며 “한두 차례 협상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어서 대북 접근법에서 한미가 단결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다음달 방미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는 동시에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에 의구심이 적잖은 의회와 언론에 한국의 비핵화 의지를 확실히 심어주는 광폭 행보를 보여줄 필요성도 제기된다. 미 퀴니피액대가 26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의 66%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지지했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응답은 19%에 그쳤으며 73%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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