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잘 모르시면, 지도 어플에 맥도날드 찍고 오시면 돼요”
1세대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이자 강남·신촌 등 이른바 핫플레이스의 랜드마크 역할을 해온 맥도날드 매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상권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 온 ‘맥세권(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점 인근 상권)’이란 단어도 점점 사어(死語)가 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맥도날드의 위기는 한두 해 겪어온 문제가 아니다. 2000년대 초 ‘웰빙 열풍’으로 촉발된 불매운동과 각종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범람으로 인한 판매량 부진 등 맥도날드의 ‘아성’을 위협해 온 위기는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맥도날드이기에, 맥도날드만이 쓸 수 있는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해왔다.
하지만 최근 맥도날드가 겪는 문제들의 심각성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주요 점포들의 연이은 폐점, ‘햄버거병 사태’에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경영진의 오판 등으로 인해 존폐를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몰렸다. 한국인이 사랑한 외식 브랜드 상위권을 차지하던 맥도날드가 왜 이런 추락을 경험하게 된 것일까? 그 뒤에 숨겨진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 화려한 데뷔, 한국인 입맛 사로잡은 지난 30년
맥도날드는 지난 1988년 강남구 압구정동에 1호점을 열며 한국 시장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한국 상륙을 위해 공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반부터다. 하지만 미국 본사 측이 요구한 10년간 순매출액의 5% 로열티와 감자와 육류 공급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정부 측과 갈등을 빚어 어려움을 겪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1986년 공인회계사 안효영씨와 함께 각각 100만 달러를 투자해 합작회사 ‘맥안산업’을 만들어 정부와 협상에 나섰다. 햄버거 패티의 원료를 국내에서 조달한다는 약속을 한 뒤에야 협상이 이뤄질 수 있었다.
1호점이 문을 연 후 매장은 더 늘었다. 1988년 9월 종로2가 태극당 자리에 2호점을 열었고 그 해에만 햄버거 100만 개를 판매해 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맥도날드는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에 각각 ‘신맥’과 ‘맥킴’이라는 합작회사를 만들고 전국적인 점포 확장에 나섰다(현재 신맥과 맥킴은 2016년 9월 28일자로 한국맥도날드로 흡수합병됐다). 업계 라이벌이자 한국 시장 선두주자인 버거킹의 사업 확장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1991년 12월에는 부산 금정구 동부터미널에 부산 1호점을 열었고, 해운대 해수욕장과 광안리 해수욕장 두 곳에 연이어 매장을 열면서 본격적인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도입 초기 맥도날드의 인기는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쉐이크쉑’ 이상이었다. 개점을 맞은 1호점 앞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1시간을 기다려 대표 메뉴 ‘빅맥’을 맛본 한 소비자는 “이것이 본토의 맛이구나”라며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도 존재한다. 특히 맥도날드는 당시 젊은 층의 소비 욕구를 촉발시킨 장본인이었다. 음식, 패션, 놀이 따위의 소비문화를 선도하는 지역인 압구정동에 들어선 1호점은 구매력 높은 젊은 층을 자극했고 금세 압구정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한국 시장에서 맥도날드의 성공은 다른 브랜드가 하지 못했던 ‘최초’에서 비롯됐다. 1992년 업계 최초로 차에서 간편하게 음식을 받아볼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를 설치했고, 24시간 매장을 운영하며 심야 손님까지 끌어 모았다.
소비자 유치에 현지화 전략을 적극 활용한 것 역시 성공의 요인이었다. 1997년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불고기 버거를 시장에 내놓으며 호평을 받는가 하면 배달이 일상화 된 한국 특성을 그대로 이용한 ‘맥딜리버리’ 서비스를 선보이며 혁신을 이어갔다.
인기의 가장 큰 원동력은 한국인과 동반 성장하겠다는 경영 철학이었다.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에 연 1,000억원 이상을 투자했으며 지난 10년간 매년 약 3.7%씩 신규 채용 인원을 증가시켜왔다.
◆ ‘악수’ 또 ‘악수’, 연이은 실책에 타격 받은 맥도날드
성공 가도를 달리던 한국맥도날드가 흔들린 것은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우선 각종 프랜차이즈들이 범람한 탓이 컸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불과 3년 사이 국내에 1,942개에 불과하던 외식 브랜드 수는 3,142개로 훌쩍 늘었다. 한국맥도날드의 수익성은 급격히 떨어졌다. 롯데리아, 버거킹 등 경쟁 업체들의 고전도 마찬가지였지만 한국맥도날드 추락 폭이 유독 컸다.
매출은 2013년 4,805억원, 2014년 5,651억원, 2015년 6,032억원으로 매년 증가했지만, 허울뿐인 성장이었다. 당기순이익은 2013년 309억원에서 2014년 41억원으로 떨어졌고, 2015년에는 131억원 손실로 적자 전환했다.
한국맥도날드는 달라져야 했다. 수익성이 악화된 2014년부터 한국맥도날드는 가맹점 수를 늘려 외적 확장과 수익성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고 했다. 당시 15.4%에 불과했던 가맹점 비율을 현재 25%까지 끌어올린 때가 바로 그 시점이었다. 2016년 초에는 조주연 마케팅 부사장을 대표로 선임해 다른 변화도 시도했다. 조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건강한 햄버거’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프리미엄 수제버거인 ‘시그니처 버거’를 시장에 내놨다. 대표적인 ‘정크 푸드’라는 자사 햄버거의 이미지 개선과 수익성 개선을 동시에 시도했다.
조 대표의 의지와는 달리 한국맥도날드의 발목을 잡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2016년 말 발생했던 ‘망원동 가맹점주의 임금 체불 사건’과 ‘햄버거병’으로 알려진 ‘용혈성요독증후군(HUS) 논란’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왔던 기업 이미지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갑질’ 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가득하던 당시 불거진 아르바이트 직원들에 대한 임금 체불 문제는 가맹점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지만 비난의 화살은 오롯이 본사를 향했다. 아르바이트 노조의 ‘망한 망원동 맥도날드 꾸미기’ 행사도 부정적 여론을 키우는 데 한몫 했다.
‘햄버거병 논란’의 여파는 이보다 더 컸다. 검찰 수사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기는 했지만, 소비자의 불안을 불식시키기에는 부족했고 결국 매출 급감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개된다.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7년 7월 한국소비자원이 시중에 판매되는 햄버거에 대해 위생 상태 조사를 진행했는데, 불고기 버거에서만 식중독 유발균인 황색포도상구균이 기준치의 3배 이상 초과해서 검출됐다. 더욱이 한국맥도날드가 소비자원의 식중독균 검출 발표를 막으려고 법원에 발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소비자의 공분은 극에 달했다.
◆ 이미지 악화에도 오로지 수익성 생각하다 고객 놓친 맥도날드
이처럼 브랜드 이미지가 급격히 나빠지는 상황에서도 조 대표의 관심사는 수익성 개선에 쏠려 있었다. 그가 대표 자리에 오르게 된 이유가 수익성 개선을 위한 일이었던 탓이다. 조 대표는 이를 위해 몇 가지 조치를 내린다. 한국맥도날드는 햄버거병 무혐의 처분을 받은 올해 2월 13일 주요 메뉴에 대한 가격 인상을 공지했다. 일부 제품 가격을 최대 20% 가량 인상하는 조치였다. 27개 제품의 평균 인상률은 약 4%에 달했다. 이에 대해 한국맥도날드 측은 “인건비와 임대료, 식자재 값이 모두 올라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했지만 소비자는 “매출 감소를 가격 인상으로 메우려는 것이 아니냐”며 반발했다.
또한 한국맥도날드는 일부 햄버거의 빵을 저가형으로 교체했다. 1955버거는 ‘1955 전용 번’에서 ‘쿼터 번’으로 교체됐고, 불고기 버거와 더블 불고기 버거도 각각 ‘쿼터 번’과 ‘레귤러 번’으로 변경됐다. 맥도날드 번은 최상급인 ‘브리오슈 스플릿 번’, ‘1955 전용 번’, ‘빅맥 번’, ‘콘밀 번’, ‘쿼터 번’, ‘레귤러 번’ 등으로 등급이 나뉘며, 레귤러 번은 주로 저가형 버거에 자주 사용된다.
출시부터 지금까지 고객의 사랑을 받아온 메뉴들도 수익성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졌다. 한국맥도날드는 맥모닝 품목 중 빅 브렉퍼스트 판매를 중단하고, 아침 메뉴에 포함된 ‘스크램블 에그’를 ‘라운드 에그’로 바꿔 계란 사용량을 2개에서 1개로 줄였다. ‘맥런치 세트’와 인기 사이드 메뉴인 맥윙도 판매를 중단했다. 또한 배달서비스인 맥딜리버리 최소 가격 23.7%나 인상했다.
이 같은 조치들은 지나치게 수익성 위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비자 반발을 불러왔지만 회사 측은 “원가 문제가 아닌 소비자 의견을 반영한 결과”라는 답변만 내놓을 뿐이었다. 결국 수익성만 생각한 경영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맥도날드의 매출은 전년 대비 20~30% 가량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 ‘철수설’까지 돌고 있는 한국맥도날드… ‘제2의 피자헛’ 되지는 않을까
연이은 악재 속에 한국맥도날드 ‘철수설’까지 돌고 있다. 한국맥도날드는 지난 2월 말 공정거래위원회에 정보공개서 등록을 자진 취소했다. 정보공개서는 관련법에 따라 프랜차이즈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사업자가 공정위에 필수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정보공개서 등록을 자진 취소했다는 것은 앞으로 한국맥도날드가 가맹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이야기다. 2014년 가맹사업 ‘확대’ 방침을 내세운 지 3년 만이다.
가맹점 확장이 어려워지면서 직영점 의존도가 올라갔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직영점에 대한 관리·감독이 철저해지고 유지에 열을 올려야 하지만 오히려 폐점하는 점포 수만 늘고 있다. 지난해 7개 매장이 폐점하고 18개 매장이 문을 열었던 한국맥도날드는 올해만 20개 매장이 문을 닫았다. 수익 창출을 위해 유지해야 할 매장을 연달아 폐업하고 있는 이 상황 때문에 철수설까지 나돌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맥도날드는 “임대료 부담에 수익이 안 나는 매장을 억지로 유지하긴 힘들다”며 “주변에 새로 문을 열 곳을 알아보고 있다”며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의심의 끈을 쉽사리 놓긴 힘들다.
한쪽에서는 한국맥도날드가 피자헛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피자헛은 1985년 이태원에 첫 매장을 열고 한국 시장 공략을 시작했다. 초기 성신제가 운영하는 동신식품이 한국 사업권을 가지고 판매를 시작했지만 1993년부터는 본사가 한국 시장 확장에 고무돼 성신제와 소송 끝에 직접 운영에 뛰어들었다. 영업 초기 한국피자헛은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성장했고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 피자 시장을 주도한 최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외식 프랜차이즈의 과당경쟁과 소비자의 정크푸드 선호 감소 등으로 최근 2~3년 새 급격히 추락해 몸집 줄이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2015년 6월 한국피자헛 유한회사가 매출 부진을 이유로 직영 매장 69개 중 51개를 가맹점으로 전환하고 4개 매장을 폐점하는 ‘가맹화 확대’ 방침을 직원들에게 통보했다. ‘한국피자헛 사태’라고 불리는 사건의 시작이다. 회사의 이 같은 조치는 55개 매장의 직원 약 3,250명을 대상으로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내린 것과 같았다.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회사 측은 나머지 14개 직영 매장에 대해서 가맹화할 것을 매장에 통보했고, 나머지 500여명의 직원들도 그해 12월 퇴사하게 됐다. 당시 회사 측은 경영 합리화라는 이유를 제시했지만 미국 본사의 ‘마스터프랜차이즈’(MFC) 시나리오에 발을 맞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로 2016년 매각 시도 당시 한국맥도날드는 본사의 마스터프랜차이즈 방침을 그대로 따랐다. 맥도날드 본사는 한국맥도날드의 지분 100%를 팔고, 위탁사업자를 통해 브랜드를 유지하고자 했다. 또 그 계약을 통해 3~5% 로열티를 챙겨 본사의 이익을 강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매각 실패를 겪고 이는 백지화 됐지만 2017년 1월 중국과 홍콩 사업을 중신그룹과 칼라일그룹 등이 구성한 컨소시엄에 마스터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매각한 바 있는 맥도날드는 언제든지 다시 마스터프랜차이즈 방식의 매각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맥도날드는 한국인들에게 단순한 패스트푸드 브랜드 이상의 가치를 보여줬다. 동반 성장이 골격인 경영 철학, 각종 사회사업 등으로 친화성을 강조한 브랜드 이미지를 통해 지난 30년 동안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외식 브랜드 중 하나로 꼽혔다. 그랬던 맥도날드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수익성이 급감하고 주요 매장을 폐점하면서 매각설까지 도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맥도날드는 정말 이대로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마는 걸까?
/이종호·정순구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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