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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실험]지하철 분홍색 좌석, 비워둬? 말아?

실제 임산부 기자가 체험한

'임산부 배려석' 소셜실험

노약자도 일반인도 아닌 임산부

분홍색 의자, 비워야 할까

서울 지하철 내 임산부 배려석을 알리는 표시 /연합뉴스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인구 1,300만명, 이 중에는 노약자에도 일반 승객에도 끼지 못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들은 임산부죠.

이들이 앉을 수 있도록 설치된 지하철과 버스 내 분홍색 좌석과 이를 비워두라는 안내 방송을 두고 매일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취재를 하면서 임산부 배려석을 두고 일반 승객들의 불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임산부가 왜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냐’

‘그렇게 불편하면 직접 자동차 몰고 다녀라’

‘양보해줬더니 여자 지정석이 됐다’

‘배려가 권리인 줄 안다’

물론 임산부 쪽도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고요.

‘대중교통 속 분홍색 좌석’을 비워둬야 하는 건지 답을 찾기 위해 실험에 나서 보기로 했습니다. 실험에는 임산부 기자 두 명이 함께 했고요. 편의상 임신 초기에 해당하는 11주차 임산부 기자를 실험자 A로, 만삭인 32주차 임산부 기자를 실험자 B로 칭했습니다. 이 실험에는 동행자 A, B, C가 함께했습니다. 하루에 90만명 이상 이용하는 지하철 3호선을 실험 장소로 택했습니다. (서울메트로의 협조를 받아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임산부 배려석 실험에는 초기 임산부인 실험자A(오른쪽)과 임신 32주차인 실험자B가 함께 했다.


#1단계: ‘저 여기 서있어요’

출근시간을 비켜난 9시 10분 삼송역

실험자 A가 나타났지만 이미 차 있는 임산부 배려석에서는 미동도 없네요. 실험자 A는 내렸다 다시 타고를 반복했지만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승객들은 실험자 A의 임산부 배지를 보지 못합니다. 실험자 A는 예상했다는 반응입니다.

대중교통에서 임산부 배지의 존재감은 작아진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시민들은 서 있는 임산부의 배지를 보지 못하거나 봐도 임산부 표식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사실 다들 스마트폰을 보거나 자거나 앞사람 보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 본다고 해도 굳이 이게 임산부 배지구나 연결시키지 않는 거 같아요”

반면 만삭인 실험자 B의 경우는 많이 달랐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승객이 못 봤을 때는 옆자리 승객의 양보를 받거나 저 멀리 있던 노약자석의 노인이 앉으라고 손짓을 합니다. 심지어는 분홍색 좌석에 앉아도 되는 아이를 안은 엄마가 와서 앉으라고 자리를 비켜줍니다. 이 부분에서는 울컥하더라고요.

“초기 때는 이런 배려를 못 받았는데 확실히 배려를 받으려면 배가 나와야 한다”며 실험자 B가 웃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승객에게 ‘저 임산부인데요’하고 양보를 요청하는 실험자 A, 승객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2단계: ‘저 임산부인데요’

이번에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승객에게 대부분의 임산부들이 제일 하기 어려운 말을 해보는 거죠.

“사실 임신하고 나서 한 번도 이 말을 해볼 생각을 못 했는데 대부분 임산부도 그럴 거예요. 용기를 못 내는 이유가 혹시나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서 거절당하면 마음이 불편해질까 봐 ‘그냥 하지 말자. 내 몸이 힘들고 말지’하거든요” (실험자 A)

실험자 A는 긴장한 채로 말을 꺼냅니다. 생각보다 이 말을 들은 시민들은 싫은 내색 없이 자리를 비켜줍니다. 처음에 성공,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성공합니다. 실험자 A는 조금은 용기를 내게 된 것 같습니다.

만삭인 실험자 B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자리를 비켜줬습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도록 합니다.



좌석은 물론 바닥에도 분홍색 커버가 깔린 지하철과 달리 버스에서 지하철 배려석을 찾기란 쉽지 않다. 노약자석 중에 하나에 손바닥 크기 만한 분홍색 임산부 배려석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게 전부다.


#3단계: ‘버스 속 임산부 배려석, 도대체 어딨는 거니’

난이도가 높아집니다. 임산부들이 지하철보다 훨씬 두려워한다는 버스입니다.

버스에 올라보니 임산부 배려석 표시는 눈에 띄게 작아집니다. 운전석 뒤의 2~4열에 있는 노약자석을 열심히 두리번거렸지만 분홍색 좌석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 이게 버스마다 상황이 다른데 분홍색 커버가 씐 좌석은 거의 없더라고요.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손바닥 만한 분홍색 스티커가 버스 벽면에 붙어있을 뿐입니다.

매일 버스로 출퇴근하는 실험자A는 임신을 겪고 나서 가장 큰 애로사항이 버스였습니다. 그는 “버스를 탈 때마다 ‘이번에는 얼마나 사람이 많을지, 어디에 어떤 자세로 서 있어야 나중에 사람들이 많이 탈 때 중간에 끼이지 않을지’ 고민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실험자 B는 버스를 타지 않습니다. 그가 버스를 타지 않는 이유는 버스는 흔들림이 커서 속이 메슥거리고 서서 중심 잡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몰려들면 압사당할 거 같아 식은땀이 난다는 얘기도 전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임산부 배려석 표식이 작아 대부분 좌석이 차있는 상황에서 만삭인 실험자 B는 배려석 앞에 서자 마자 양보를 받았습니다. 초기인 실험자 A는 역시나 말을 해야 비켜줍니다. 그러다 한 번 거절을 당합니다. (직접 설명하기는 너무 슬픈 관계로 영상을 참고하시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4단계: ‘작은 표식이 바꾼 변화’

임산부 배려석임을 알리는 작은 카드


지금 상황에서 이 행동이 바뀔 방법은 없을까.

저희는 작은 표식 하나라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지 실험해봤습니다. 임산부의 목소리를 담은 작은 카드를 임산부 배려석에 올려놨습니다.

임산부 배려석을 알리는 임산부의 목소리를 담은 작은 카드를 비어있는 임산부 배려석에 올려놓았다. 카드를 발견한 승객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두근두근하며 카드를 내려놓았지만 카드를 보고도 더 먼저 반응한 엉덩이에 깔리거나 쓱 뒤로 밀리거나 옆에 커다란 짐이 올려지거나 카드는 수난을 당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꼼꼼하게 읽어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강요가 아니라 유쾌하게 말 거는 걸로 생각하고 즐기는 사람들도 있네요. 마음 뿌듯해진 순간입니다.



#마무리

실험이 조금은 성과를 얻은 것 같습니다.

저희가 발견한 건 임산부라는 사실을 인식할수록 사람들의 행동은 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켜주세요’, ‘양보해주세요’라는 말은 임산부에게 큰 숙제이자 스트레스입니다.

수많은 임산부들이 하지 않아도 되는 갈등을 겪지 않게 해주는 게 저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 같습니다.

#양보하지_ 마세요_비워두세요.

기획 정혜진·정수현기자, 촬영·편집 강신우·정가람기자 내레이션 정순구기자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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