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운용하는 산재·고용보험기금은 근로자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거나 일자리를 잃었을 때 지원되는 사회보험이다. 노동계가 이번에 문제 삼은 것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노조가 결성되지 않았거나 갑질 논란을 빚었다는 대기업이다. 이른바 사회적 책임투자에 걸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투자가치와 거리가 먼 노조 유무 같은 애매한 척도를 제시하며 투자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은 월권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삼성전자의 코스피 시가총액 비중이 23% 수준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안정적 투자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용부가 코스피지수를 추종하자면 대기업 투자가 불가피하다며 난감해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더욱이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근로자들의 비상금이다. 근로자들이 절반을 내는 고용보험과 달리 노동계가 목소리를 높일 만한 여지가 적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종목만 투자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이러다가는 정부 기금이 노조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러잖아도 고용 관련 기금은 일자리 예산에 동원되면서 기금 건전성에 빨간 불이 켜진 상태다. 정부 일각에서는 기업의 부담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판이다. 당장 시급한 것은 고용 관련 기금의 안정적 수익을 지키는 일이다. 노동계는 과도한 개입을 자제하고 무엇이 근로자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는 길인지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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