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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연기금 독립성’ 없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독이다

정부가 국민연금에 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 위한 행보를 서두르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제출받은 연구용역 보고서를 바탕으로 7월부터 국민연금에 이 준칙을 적용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미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에 착수했다. 연기금에 ‘5%룰’과 ‘10%룰’의 예외를 인정하기 위해서다. 현행 자본시장법에는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투자자가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려고 할 경우 지분이 1%포인트 이상 변동할 때마다 5일 이내에 보고해야 하고 10% 이상 보유한 주주는 6개월 이내 발생한 매매차익을 기업에 반환해야 한다. 이런 규정 때문에 주주권 행사에 제약이 예상되자 연기금에 한해 예외를 인정해주려는 것이다.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을 투명화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연기금의 독립성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연기금이 정부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는 이 제도가 연금사회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우리는 지난 정권에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과정에서 권한 남용을 행사한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상황은 지금 정권이라고 해서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국민연금은 박능후 복지부 장관의 제안으로 대한항공 사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면서 경영권 개입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그전에도 국민연금은 KB금융 주주총회에서 노동이사 선임에 찬성함으로써 정권의 입맛에 맞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도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작용을 낳을 소지가 많다. 미국이나 캐나다·일본 등이 연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정부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취지를 살리려면 우선 연기금의 독립성 확보 장치부터 마련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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