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풀러스를 서비스할 날이 눈 앞에…설마 거기도 규제가 (있을까)”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4월 27일. 차량 공유업체인 풀러스의 김태호 대표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김 대표가 그동안 규제로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20일 정보통신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촉망받던 스타트업인 풀러스가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위기상황에 내몰린 이유로 불합리한 규제와 투자사들의 지나친 간섭 등이 꼽힌다. 그동안 풀러스의 성공은 현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추진 의지의 가늠자처럼 여겨져 왔다. 풀러스는 지난해 11월 “출퇴근시간에만 승차공유를 허용하고 있는 현행법이 혁신을 막는다”며 이용자가 사전에 시간을 선택하기만 하면 사실상 24시간 승차 공유가 가능하도록 한 ‘출퇴근 시간선택제’를 시행했다.
이에 택시업계의 반발을 우려한 서울시가 풀러스를 고발했고 이후 현 정부가 신설한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로 논의 주체가 바뀌었다. 하지만 택시업계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7개월째 논의가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풀러스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결국 승차공유가 또 하나의 ‘규제 완화 실패 사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내 한 승차 공유 업계 관계자는 “풀러스가 규제 완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사업 모델 변경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풀러스의 사업 존속이 어려워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사용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최근 코리안스타트업포럼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승차공유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94.1%가 “승차공유는 사회적 편익을 증가시킨다”고 답했고, 59.6%는 “승차공유가 고비용, 승차 거부, 불친절 등 택시 서비스의 문제점을 개선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제 갓 첫걸음을 뗀 공유 경제가 만들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풀러스는 최근 본사를 기존 마포구 동교동에서 강남구 삼성동의 대형 스타트업 공유 사무 공간으로 이전하고, 현재 50여명 수준인 직원을 올해 안에 100명으로 늘릴 계획이었으나 김 대표의 사임과 정리해고 결정으로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다.
이번 사태가 스타트업 생태계가 직면한 투자사와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거액을 투자한 뒤 지나치게 간섭해 경영자율권을 침해하고 사업이 어려워지면 손쉽게 정리해고를 결정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사임 배경에도 대주주와의 서비스 방향과 투자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대표는 승차공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꾸준한 투자를 통해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대주주들은 규제 완화가 늦어지는 가운데 추가 투자로 인한 지분 희석과 적자 확대를 못마땅해했다는 것이다.
현재 풀러스의 최대주주는 포털 다음 창업자로 유명한 이재웅 대표가 설립한 투자사 ‘에스오큐알아이’라는 회사로 총 34.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SK주식회사(지분 18%) 등이 대주주다. IT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회적 영향력이 높은 대기업이나 기관투자가가 스타트업에 투자한 뒤 창업자와 사업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직 대표이사를 갈아치우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풀러스도 이런 사례에 해당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풀러스 직원에 대한 정리해고의 방식도 논란이 되고 있다. 풀러스는 직원 50여명 가운데 20여명을 제외한 모든 인원에 대해 정리해고자 명단을 만들어 내려보내고, 수습의 경우 공지를 통해 바로 계약을 종료했다. 정리해고자에게는 대안으로 쏘카에 면접 기회를 제공한다고 공지했다. /양사록·지민구기자 sa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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