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글로벌 석유회사 BP가 발주한 10억달러 규모의 아프리카 또르뚜 가스전 개발 사업의 해양플랜트 수주전에서 현대중공업(009540)과 삼성중공업(010140)은 중국 업체인 코스코 컨소시엄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애초 한국 업체들이 유리하다는 전망이 나왔으나 결국 가격 경쟁에서 밀린 것으로 전해졌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면서 한국 주력산업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세계 1위였던 한국 조선업계는 핵심 시장인 해양플랜트에서 수십개월째 일감을 따내지 못했다. 유가 하락으로 해양플랜트 일감 자체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그나마 간간이 나오는 일감도 전부 중국 등에 뺏긴 탓이다. 일감이 부족해 울산 해양공장의 문을 닫는 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대우조선해양(042660)도 지난 2014년 이후 해양플랜트 수주 실적이 제로다. 삼성중공업도 지난해 해양플랜트 2건을 수주했지만 2016년에는 한 건도 없었고 올해도 없다.
중국 업체들의 공세는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은 이날 담화문을 통해 “고정비를 줄여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것 말고는 3분의1 수준의 인건비로 공격해오는 중국 업체를 이길 방법이 없다”며 앞으로 무척 힘든 시간이 다가올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5,600여명에 달하는 해양플랜트 인력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타 사업부 전환 배치 등이 진행 중이지만 사업부 매각설 등 생존을 위한 강력한 허리띠 졸라매기가 예상된다.
이 같은 중국 업체들의 공세는 조선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철강·디스플레이·스마트폰 등 한국의 주력산업 전 분야에서 위기 신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업계 1등 기업인 LG디스플레이조차 올해 1조원에 가까운 대규모 적자가 예상될 정도다. 액정표시장치(LCD) 등의 분야에서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 아래 중국 업체들의 물량 공세가 심해지면서 빠른 속도로 시장 지위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과 스마트폰도 갈수록 중국 업체에 경쟁력을 빼앗기고 있다. 특히 한국 경제의 중추인 반도체도 최근 중국 정부의 200조원을 쏟아붓는 ‘반도체 굴기’ 앞에 몇 년 뒤에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중국 제조업체들의 굴기를 단순한 저가 공세로만 보면 안된다”며 “생산성 향상이 이뤄지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저가로 내고 있으며, 이는 한 업종이나 한 품목의 이슈가 아니라 한국 산업계 전반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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