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취소 위기에 몰린 신한울 3·4호기의 매몰 비용은 최소 6,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한국수력원자력이 국회에 제출한 ‘신규 원전사업 종결 방안’에서 밝힌 금액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에 이미 투입된 비용 외에도 주기기 사전 제작비와 울진지역의 대체사업비 등을 고려한 비용이다. 한수원은 이 문건에서 “협력업체 등의 소송제기 시 배상 비용도 발생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앞으로 추가 비용이 소요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런 직접인 매몰 비용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 고사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신규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 산업생태계가 황폐화함은 물론 해외수출 쾌거를 이룬 기술력마저 사장될 것임은 자명하다. 국내 원전 기술진은 해외 원전 수출길을 연 3세대 한국형 원전 ‘APR 1400’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APR1400+’의 기술 개발까지 완료했다. UAE와 영국 수출 모델보다 진전된 기술력을 확보하고도 실제 적용하지 못한다면 죽은 기술이나 다름없다. 이 모델은 원래 천지 1·2호기에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얼마 전 신규 원전 백지화 결정으로 빛을 보기도 전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학계에서 ‘APR 1400+’를 신한울 3·4호기에 채택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국과 프랑스 등 원전강국이 4세대 원전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마당에 우리만 뒷걸음질을 친다면 미래의 수출경쟁력까지 갉아먹는 꼴이다. 정부는 최근 탈원전 정책이라는 표현을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바꿨다. 탈원전을 외치면서 수출진흥에 나서는 것이 배치된다는 지적에서다.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호도하지 말고 실질적인 정책 전환이 요구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