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은 미술작가였다. 말문이 트이면서부터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예술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친구들과 오순도순 모여 세계적인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깊은 영감을 받았다. 영국 출신의 팝 아티스트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은 10대 소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 풍경을 여러 앵글, 여러 순간에 걸쳐 찍은 사진을 결합해 만든 포토 콜라주(photographic collage)는 그녀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심어줬다. 캐나다 유학 시절, 캘리포니아 여행은 한동안 잊고 있던 호크니에 대한 추억을 소환했고, 미국에서 일하고 싶은 욕망을 일깨웠다. 우연치 않게 국내 최대 뷰티 온라인 쇼핑몰인 미미박스의 미국 진출에 합류했고, 글로벌사업본부장을 맡아 해외 사업을 키워냈다. 직장 생활 3년 만에 밀려오는 업무 스트레스와 과다한 화장품 사용으로 망가진 피부를 되돌릴 방법을 찾다가 ‘비건(Vegan) 화장품’에 눈을 뜬 후, 자신의 손으로 비건 화장품을 만들겠다며 사표를 던졌다. 비건 화장품 ‘멜릭서’로 미국 시장을 석권하겠다고 선언한 이하나(29·사진) 뷰티긱스 대표의 이야기다.
◇한 장의 사진에 수천 시간이 담기다
어릴 적에는 말수도 적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말을 하기 시작한 3살, 엄마 손에 이끌려 찾은 미술학원은 그에게 세상의 전부였다. 말하고 싶은 것, 드러내고 싶은 것이 그녀의 손을 통해 표현된다는 사실은 감동 그 자체였다. 미술작가가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고, 자신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과목이 미술이었던 만큼 스트레스 없이 예술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했다. 다행히 뜻하는 대로 선화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지금도 이 대표는 같은 반 친구들과 저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얘기를 나눴던 10대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녀가 좋아했던 작가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데이비드 호크니였다.
“리히터의 작품 세계는 온갖 예술언어로 짜인 모자이크와도 같았어요. 포토 리얼리즘과 같은 사진적 재현이 있는가 하면, 구상성이 배제된 회화적 추상도 엿보였지요. 대표적으로 ‘베티’와 ‘두 개의 양초’를 좋아하는데 이들 작품은 사진처럼 보이는 유화작품이에요. 존재라는 것에 대한 작가의 깊은 성찰이 담겼지요.”
그에게 깊은 영감과 강력한 영향을 준 또 다른 작가는 데이비드 호크니였다.
“영국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호크니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났어요. 전혀 다른 나라, 다른 환경의 공기와 바람이 그의 작품을 완전히 바꿨던 것 같아요.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그는 따뜻하고 눈부신 사람과 사물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어요. 특히 수천 개의 사진을 붙여서 하나의 작품을 표현하는 사진 콜라주 기법으로 유명한데, 보통은 한 장면에 하나의 시간만 담긴다면 호크니는 한 작품에 여러 시간을 담아내 시공간을 입체적으로 표현했어요.”
◇캘리포니아에서 미래의 삶을 꿈꾸다
이화여대 서양화가 08학번으로 입학했지만 그녀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 싶었다. 유학을 고민했지만 자신과 오빠까지 뒷바라지하는 부모님께 더 큰 짐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다. 결국 대학 2학년 때 캐나다 1년 연수를 다녀오기로 했다.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 자리한 맥길대에서 지냈던 그녀는 귀국하기 전에 미국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2010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난생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그녀는 강렬한 햇빛 속에 빛나는 자연의 매력에 완벽하게 사로잡혔다. 산이며 바다며 들판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마치 자신이 호크니의 작품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로스앤젤레스에 주로 머물렀는데, 도시가 주는 느낌이 너무도 여유롭고 편안했어요. 날씨가 너무 좋은 데다 바다와 산이 주는 풍광도 최상이었구요. 호크니와 같은 팝 아티스트들이 왜 이 곳을 중심으로 활동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지요. 햇빛이 풍부하고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나중에 반드시 돌아와서 이곳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마치 미래의 드림하우스처럼, 언젠가는 삶의 근거지를 이곳에 두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든 거죠.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새로운 재능에 눈뜨다
드림하우스를 가슴 속 깊은 곳에 품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시각디자인을 복수 전공했다. 표현의 영역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에 디자인을 배우면서 응용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던 것. 당시 이화여대를 비롯해 연세대, 홍익대 미대 학생들이 모여서 디자인씽킹을 하는 동아리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팀워크를 통해 사고를 넓히고 일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또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 엔턴십에 참고했고, 벤처 1세대 창업가인 프라이머의 이택경 대표와 권도균 대표를 만났다.
대학 4학년 때 그녀는 첫 번째 직장 생활을 경험했다. 뷰티 브랜드를 대상으로 리워드 광고를 하는 스타트업이었는데, 1년간 모바일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새로운 재능을 깨닫게 됐다.
“콘텐츠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 기획을 했었어요. 대학생이니 아르바이트로 하루 8시간씩 일했는데, 당시 월급이 100만원 정도였던 것 같아요. 많은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고정적으로 일을 하면서 모바일 디자이너로서의 스킬을 키울 수 있었다고 봅니다. 언젠가는 실리콘밸리에 가서 UX/UI 디자이너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죠.”(웃음)
당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권위자인 김진우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의 강의를 청강한 것은 그녀에게 삶의 전환점이 됐다. 같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가 미미박스에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만들려고 한다며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를 소개해줬다. 미미박스는 2012년 문을 연 화장품 전문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초창기에는 화장품을 매달 배달해주는 ‘정기배송 서비스’로 20~30대 여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2015년부터는 ‘아임미미’, ‘포니이펙트’ 등 자체 브랜드를 통해 화장품 제조·유통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했다.
◇3년 만에 해외사업본부장, 비결은 오너십
이 대표가 미미박스에 면접을 본 때는 2013년 12월로, 미미박스 측에서도 필요한 인재라며 곧바로 합격이 결정됐다. 하지만 당시 이 대표는 이대창업지원센터의 해외 견학 프로그램에 선정돼 500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떠나는 실리콘밸리 탐방이 예정돼 있었다. 실리콘밸리에 다녀온 후 회사에 다니겠다고 하자 면접을 맡았던 담당 임원은 미미박스도 1월에 미국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시 미미박스가 국내 최초로 세계적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YC(와이콤비네이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 몇 명이 3개월간 미국에 체류할 예정이었어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면서 나도 데려가 달라고 졸랐죠. 그쪽에서는 입사하지도 않은 직원을 데려간다는 게 말도 안 된다며 완곡하게 거절하더군요. 상심해서 돌아왔는데 다음날 대표가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 같이 가자고 말이죠. 그 해 12월 31일 큰 캐리어 가방을 끌고 논현동의 미미박스 사무실로 갔을 때가 지금도 생생해요. 당시 대표님이나 이사님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면서 ‘이번 미국행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어요.”
이때부터 미미박스는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했고, 그 해 미국 사무실도 마련했다. 입사하기도 전에 미미박스의 해외 정착기를 함께 한 이 대표는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오피스를 낼 때도 참여하며 글로벌 진출의 선봉에 섰다.
그녀는 “미국에서 3개월은 인턴으로, 이후 사원으로 일하다가 디자인팀 파트장, 디자인팀장, 이후 해외사업부장으로 고속 승진했다”면서 “입사 2년 차에 해외사업부를 총괄했으니 일반 대기업이나 중견중소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인 속도였다”고 회고했다.
모바일 디자인 기획 업무를 하다가 해외 진출 업무까지 확장하면서 젊은 나이에 고속 승진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오너십(ownership)’이라고 말했다.
“무슨 일을 맡든지 업무를 정량화해서 진행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어요. 디자인 같은 경우도 업무 단위를 정량화해서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리소스를 제안했고, 한번 결정되면 목표한 프로젝트를 반드시 달성했던 거죠. 일 욕심도 많았고, (급여나 승진 등) 조건을 따지지 않고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경영진에서는 당연히 우리 회사에 오너십이 있다고 판단했을 거에요.”
2015년 초 미미박스는 중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중국사업부를 맡아 이듬해 여름까지 1년 6개월 동안 열정적으로 일했다. K뷰티가 뜨면서 중국 사업은 예상보다 잘 됐다. 진출 2년째 되는 2016년 중국 매출만 300억원에 달했다. 국내 매출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미국과 중국에 이어 홍콩, 대만, 싱가폴까지 진출하며 미미박스의 해외 사업은 파죽지세로 커졌다.
◇피부 트러블, 페인 포인트를 창업 아이템으로 삼다
그렇듯 회사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지만 정작 이 대표 본인은 고민이 깊어졌다. 잠도 못 잘 정도로 일에 매진하면서 지내다 보니 피로가 누적됐고, 이는 곧바로 피부 트러블로 나타난 것. 뷰티 회사에 다니는 입장에서 얼굴에 울긋불긋 트러블이 난 상태로 바이어를 만날 수 없어 더 많은 화장품을 발랐지만 오히려 상태는 악화됐다.
“나름 좋다는 글로벌 뷰티 브랜드의 제품을 다 써봤어요. 하지만 피부는 갈수록 안 좋아져서 나중에는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울 정도였죠. 그러다가 화장품을 중단하면 어떠냐는 지인의 충고를 듣고 기존 화장품을 내다 버린 후 식물성 화장품만 사용하기 시작했죠. 화학 방부제가 전혀 없는 화장품을 쓰니까 피부가 천천히 좋아지더군요.”
개인적 체험은 화장품에 대한 관점 자체를 바꿔 놓았다. 아름답게 해주는 화장품이 오히려 독이 된다면 안 쓰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손으로 건강한 화장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 비건 화장품을 목표로 삼았다. 비건 화장품이란 동물성 성분을 사용하지 않고, 동물 실험을 통해 제품 개발도 하지 않는 화장품을 말한다.
하지만 곧 바로 창업을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실무 영역에서 경험을 쌓았지만 충분한 자본도 갖춰지지 않았고 경영 전반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지도 문외한이었다. 더구나 해외에서 승산을 걸기 위해선 해외 마케팅을 제대로 파고 들어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은 다른 곳도 아닌 미국 시장이었다. 해외사업본부장을 맡으며 파악한 미국이라는 시장이 갖는 특징이 비건 화장품이 성장하기에 적절하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이마켓플레이스를 활용하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이를 위해서는 아마존 경험이 반드시 필요했다. 미미박스 출신인 만큼 국내 대형 뷰티 브랜드에서 러브콜이 쏟아졌지만, 그는 아마존 마케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업체를 선택했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핸드폰케이스 제조업체 케이스올로지였다.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세리토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로, 대표이사도 한국인이었다.
“매출의 95%가 아마존에서 나오는 회사였어요. 2017년 9월 미미박스를 나와 케이스올로지로 옮겼지요. 미국 사업 비중이 큰 것도 좋았지만, 제품 자체가 엣지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죠.”
케이스올로지에서 일하면서 아마존의 생리를 좀 더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아울러 미국 시장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배울 수 있었다. 회사 생활도 만족스러웠다. 대학 시절 꿈꿨던 삶처럼 강렬한 태양과 맑은 하늘과 바람이 함께 하는 꿈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근무 여건에 만족하는 것과 비례해서 불안감도 밀려왔다. ‘여기서 안주하면 비건 화장품 업체를 창업할 수 없다’는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더 늦으면 안 된다고 판단한 그녀는 올해 3월 사표를 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의 묘약 ‘멜릭서’ 탄생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대학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와 만나 자문을 구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꿈과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한 벤처 선배로서의 조언을 듣고 싶어서였다. 권 대표는 성심을 다해 멘토링을 해줬고, 마침내 그녀가 지난 4월 6일 뷰티긱스 법인을 세웠다. 비건 화장품 브랜드는 ‘멜릭서(Melixir)’로 정했다. 연금술에서 마시면 불로장생을 할 수 있고,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는 묘약이라는 의미를 갖는 ‘엘릭서(elixir)’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대표는 “나의 만병통치약(My elixir)일 수도 있고, 마법을 뜻하는 매직(Magic)의 의미도 담고 있다”며 “우선 미국 시장을 겨냥하는 만큼 현지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브랜드로 정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대표는 “K뷰티의 인기는 글로벌 시장 어느 곳에서나 뜨겁지만 중국 시장의 경우 메이크업 제품을 선호하고 미국 시장에서는 스킨케어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면서 “미국에서 한국 스킨케어는 ‘10스텝(10steps·10단계에 이를 정도로 시장이 세분화돼 있다는 표현)’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스킨케어에 대한 높은 신뢰도에다 새롭게 뜨는 비건 화장품으로 승부수를 던지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했던 것. 이 대표는 “미국 뷰티 시장의 성장률은 연평균 4%인데, 비건 뷰티의 성장률은 7%에 달하고 있고, 2025년께 미국 뷰티 시장의 절반은 비건 화장품이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색조 화장품의 경우 글로벌 제조사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약점으로 지목했다. 이 대표는 “색조는 각양각색 피부색과 피부 톤에 맞게 컬러의 변형(variation)이 중요한데, 국내 뷰티 기술력은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면서 “국내 제조사의 기술이 아시안 핏에 맞춰져 있는 반면 서구 시장에서는 다양한 피부 톤을 상대해야 하는 게 난점”이라고 지목했다.
그런데 왜 하필 비건 화장품일까. 천연 유래 성분으로 만들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 대표는 화장품 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인 동물 실험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화장품은 인체 안전성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동물실험을 많이 하는데, 주로 토끼를 대상으로 실험합니다. 토끼 눈에 화장품의 기초 성분이 되는 화학약품을 계속 주입하는 거죠. 실험 자체가 잔혹해서 동물권에 대한 논란이 계속 일고 있죠. 파라벤과 같은 화학 방부제도 피부 자극을 유발할 수 있어 유럽 등지에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글로벌 시장에 유통되는 화장품은 유통단계 5년에 달해요. 글로벌 뷰티 브랜드는 통상 개봉하기 전 3년, 개봉 후 2년의 유효기간을 갖고 있는데 액체류가 이렇게 오랜 시간 유지되려면 얼마나 많은 화학 성분과 화학 방부제를 넣어야 할까요. 그러다 보니 유통단계에서 굉장히 많은 돈이 투입될 수 밖에 없는 구조죠. 백화점에 들어가면 50%의 수수료, 면세점에는 60~65%의 수수료를 떼어가요. 유명 모델을 써서 마케팅을 하니 당연히 마케팅 비용도 엄청나구요. 화장품 원가는 5%도 안 된다고 봐야 합니다.”
멜릭서는 동물 친화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원료를 얻는 동물성 원료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말에게서 얻는 마유크림이나 달팽이크림, 상어 간에서 추출하는 스쿠알란 등도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기에 사용하지 않고 식물성 성분으로 대체하여 제품화 한다는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미국 뷰티 시장 석권을 꿈꾸다
지금까지 개발한 제품은 페이스오일과 비타민C세럼이다. 페이스오일은 식물에서 추출한 스쿠알란을 베이스로 했다. 이 대표는 “기존에 스쿠알란이 상어 간에서 추출하는 안티에이징 성분으로 알려졌는데 올리브 등 식물에서도 추출할 수 있다”면서 “동물성 스쿠알란보다 안정성이 높고 효능도 효과적인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페이스오일은 식물성 스쿠알란 92%를 함유하고 있다. 프랑스 에코서트 인증을 받은 원료를 사용했다.
비타민C세럼 역시 식물성 성분으로 녹차수, 비타민, 오렌지수와 함께 미백 인증 성분인 나이아신아마이드를 넣었다. 이후 페이스마스크, 립밤, 클렌저 등으로 카테고리를 넓혀나간다는 전략이다. 천연 성분을 사용하는 만큼 개봉 후 사용 기한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용량을 50ml 이하로 작게 만들어 자주 교체할 수 있게 해 신선한 상태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이 대표는 “화장품에 들어가는 원료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떻게 추출되서 우리에게 왔는지 알 권리가 우리에겐 있다”면서 “멜릭서는 이런 모든 과정에서 깨끗하면서도 윤리적인 원료만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이달 말 제품 개발을 마무리하는 한편 8월 말께 아마존을 통해 본격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특히 아마존 공략을 위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비건 뷰티 인플루언서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수많은 뷰티 브랜드가 있는 상황에서 멜릭서가 단시간에 이름을 알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다만 진정성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었고, 이러한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고객들이 알아줄 것으로 믿습니다. 아울러 요즘 소비자 트렌드에 맞게 인플루언서를 적극 활용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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