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풀뿌리 연구인력을 튼튼히 하기 위해 KAIST 등 과학기술특성화대의 이공계 석·박사 과정 학생연구원 1만여명에게 매달 기본 생활비를 지원한다. 연 20조원 규모의 국가 연구개발(R&D) 과제가 98%라는 높은 성공률에도 정작 사업화 비율은 20~30%밖에 안되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출연연의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혁신하고 고위험·혁신형 연구 투자도 강화한다. 세계적 선도연구자(논문 피인용 상위10%)를 현재 3,000여명에서 6,000명으로 늘리고 혁신형 창업기업의 비중을 현재 21%에서 3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6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1회 전원회의에서 ‘국가기술혁신체계 고도화를 위한 국가 R&D 혁신방안’을 확정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우리의 R&D 투자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위이나 고비용·저효율 구조라는 비판도 많다”며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없을 뿐만 아니라 후보군에도 오르지 못하고 우수 학술지 인용건수가 부족한 것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사람’ 중심의 창의적 R&D시스템 전환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공계 석·박사 과정 연구원에 대한 지원(학생맞춤형 장려금 포트폴리오)을 올해 KAIST를 시작으로 내년부터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과학기술특성화대 전체로 확대하기로 했다. 박사 과정은 월 100만원을 주고 실적이 좋으면 월 45만원가량을 더 준다. 석사 과정은 월 70만원에다 성과에 따라 추가로 30만원가량을 더 지급한다. 과기정통부는 “성과급은 연구실별 연구비 규모에 따라 차등 지급돼 더 많이 받을 수도 있다”며 “학생연구원 인건비가 연구실 규모 등에 따라 편차가 컸는데 앞으로는 국가 R&D 학생인건비, 민간 R&D 인건비, 조교수당, 장학금 등의 재원을 묶어 기본생활비를 지원하자는 취지로 추가 재정이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박사후연구원’은 소속기관과 근로계약을 맺게 되고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있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생(UST)과 학연협동과정학생도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발명시 학생연구원에게 특허권과 기술료 수입을 공정하게 지급하고 교수의 유용을 막기 위해 학생인건비 관리 주체를 ‘교수’에서 ‘대학’으로 바꾸기로 했다. 종이영수증처럼 불필요한 서류제출도 없애기로 했다.
정부출연연구원 등 공공연구소가 인건비 확보를 위해 PBS 등 단기·현안 위주 다수 과제에 매몰돼 있다고 보고 자율·책임 원칙하에 평가시스템을 개편하기로 했다. 과제선정·평가·관리체계를 고위험 혁신형 연구에 맞게 개선하고 평가를 유연하게 한다는 것이다. 공공연구소는 과거 주력산업의 원천기술과 우수인력을 공급하다가 대학과 기업의 성장으로 정체성이 퇴색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구자 주도형 기초연구 투자도 올해 1조4,200억원에서 오는 2022년 2조5,000억원으로 갑절이나 늘릴 방침이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고위험·혁신형 연구도 현재 신규예산의 11%인 것을 2022년 35%까지 높이기로 했다. 기초과학 연구 주제는 연구자가 정할 수 있다. 내년에는 과학적 난제를 풀기 위한 과제를 지원하는 ‘미래융합 선도프로젝트’를 기획해 2020년부터 시행한다. 문 대통령은 “매년 5만개가 넘는 정부 R&D 과제가 진행되고 있는데 성공률이 무려 98%에 달한다”며 “단기 성과 과제에 집중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세계적인 연구성과나 혁신기술을 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행착오와 실패가 용인되는, 긴 호흡의 연구환경을 만들고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수행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정부는 국가연구개발특별법(가칭)을 만들어 100여개의 부처별 규정을 일원화·간소화하고 부처별 연구관리전문기관도 1부처 1기관 원칙하에 정비하기로 했다. 17개의 연구비관리시스템은 이지바로(과기정통부)와 RCMS(산업부)로 통합하고 20개의 과제지원시스템도 표준화한다. 지난 4월부터 대형과제의 예비타당성조사 등 R&D시스템을 혁신한데 이어 R&D 평가·일몰제 도입 등 현장 위주 규제완화에 나서기로 했다.
뿌려주기식 기업R&D도 한계기업 양산이라는 비판이 많아 혁신형 벤처·중소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한다. 중앙정부 위주의 파편화된 지역R&D 투자도 지역 산업발전과 일자리 창출 효과가 미미해 ‘밑빠진 독에 물붇기식’이라는 지적이 나와 지역이 기획하고 정부가 매칭하는 형태로 바꾸기로 했다. 미세먼지 등 환경이나 교통, 의료건강처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연구개발도 확대할 방침이다.
임대식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 R&D의 큰 틀을 ‘사람’과 ‘사회’ 중심으로 변화시켜 연구자와 기업이 자율적·창의적으로 혁신성장에 나서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고광본 선임기자·민병권기자 kbg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