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거리를 가득 메운 1,000여명의 시민들이 “모두가 공범이다”라고 외치며 행진을 벌였다. 네오나치 단체인 국가사회주의지하당(NSU)을 창설한 베아체 췌페는 2000~2007년 터키계 이민자 8명을 포함한 10명을 연쇄 살인한 혐의로 이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마지막 살인에서 선고가 내려지기까지 11년이나 걸린 이유에 대해 시민들은 ‘사법당국의 인종차별’을 꼽았다. 경찰은 수사 초기 사건의 원인을 터키계 내부의 분쟁으로 단정 짓고 희생자 가족을 심문했다. “모두가 공범이다”라는 외침은 터키계 독일인을 살해한 범인이 독일인 모두일 수 있다는 반성이다.
# “내가 이기면 독일인으로 칭송받지만 지면 이민자로 비난받는다. 독일에 세금을 내고 2014년 월드컵에서 우승도 했는데 나는 ‘다른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다.” 터키계 독일 축구선수 메주트 외질이 22일 독일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반납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장문의 글은 독일 내 인종차별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독일 정치인들에게 ‘염소(터키계 독일인을 경멸하는 말)자식’ 이라는 언어폭력까지 당했다는 그의 고백은 월드컵 스타조차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독일 사회가 ‘인종차별’ 논란으로 시끄럽다. 이민자 포용의 상징이었던 축구계의 간판스타 외질의 독일 국가대표팀 은퇴 선언은 약 50년 전 ‘손님 노동자’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냈던 터키계가 여전히 두터운 유리천장 아래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지금도 외딴섬처럼 ‘독일 안의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터키계 이민자들은 경제·문화적 박탈감, 반(反)난민·민족주의 정서와 복잡하게 뒤얽혀 독일 사회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독일 인구 8,200만명 중 약 35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터키계 독일인은 1960~1970년대 손님 노동자로 독일 땅을 밟은 이민자들과 그의 후손들이다. 옛 서독은 경제발전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1년부터 터키인을 받아들였다.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터키인의 노동력은 서독 정부의 구미를 당겼다. 터키에서 건너온 손님 노동자는 첫해 6,800명으로 시작해 1973년 노동자 초청이 중단될 때까지 총 91만명으로 늘었다. 이들 대부분은 광업·제철 등 독일인들이 취업을 꺼리는 3D업종에서 일하며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는 데 일조했다. 거리 곳곳에서 터키 음식을 파는 노점과 가게, 히잡 등 이슬람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오늘날의 독일 풍경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문제는 독일 정부가 터키 노동자를 초청하는 데만 바빴을 뿐 이들을 독일 사회에서 자리 잡게 하기 위한 정책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터키인 노동자의 가족 동행은 1970년대에나 허가됐으며 외국계 자녀의 이중국적은 앙겔라 메르켈 3기 집권 때인 2013년에 허용됐다. 독일 정부가 사회통합 정책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3D업종은 점차 ‘터키 출신들의 직업’으로 굳어졌고 이들의 생활환경도 나아지지 않았다. 터키 이민자들이 다수 모여 사는 노이쾰른 지역은 ‘가난하고 더러운 동네’로 인식된다. 실제로 이 지역은 독일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데다 독일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 독일 안의 외딴섬처럼 돼버린 지 오래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은 터키 이민자 1세를 넘어 2세까지 대물림됐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터키계 독일인 2세들은 아직도 “진짜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는다. 스스로 독일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인종의 뿌리를 따지는 무례한 질문이다. 사회·경제적 차별도 만연해 있다. 독일 일간 한델스블라트에 따르면 18~24세 가운데 학교 졸업장이 아예 없는 사람의 비율은 이민자 출신이 12%로 독일 출신(4%)에 비해 월등히 높다. 터키계가 ‘출세의 관문’으로 통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김나지움에 진학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우여곡절 끝에 고용시장에 나와도 취업과 승진에서 차별을 받는다. WZB베를린사회과학센터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무슬림·흑인 구직자가 받는 거절 통보는 백인·기독교 지원자와 비교해 7% 높다.
터키계에 대한 독일인들의 거부감은 이슬람 종교 계율에 강하게 얽매여 기독교 문화와 융합되지 못하는 데 따른 사회·문화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로이터통신 등은 유독 최근 들어 정도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2014년부터 물 밀듯이 들어온 160만명의 난민들이 터키계 독일인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저성장이 고착된 상황에서 난민들에게 들어가는 사회보장비용이 달갑지 않은 독일인들은 여전히 가난한 터키계에까지 고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 난민과 기존 이민자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흉기난동도 터키계에 대한 불안감을 추동하는 이유다. 터키계 주민들이 마치 ‘50년 전에 들어온 난민’ 취급을 받는 것이다.
소외된 독일 내 터키계는 터키에서 민족주의 정서를 제고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지지하며 독일 사회의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6월 치러진 터키 대선에서 독일의 터키계 유권자 중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투표한 비율은 65.7%로 전체 득표율인 52.6%를 훌쩍 뛰어넘었다. 반대로 독일인들은 터키 이민자에게 품는 반감을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대한 지지로 표현한다. AfD는 외질 은퇴 논란을 이중국적제 폐지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렇게 터키가 좋으면 독일이 아닌 터키에서 살라’는 것이다. 독일 사회는 50년간 지켜온 자유민주주의와 다양성의 가치가 양 극단으로 찢기지는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독일 일간 빌트 등 주류 언론이 외질 선수 관련 논란이 일어난 것은 그가 에르도안 대통령과 만나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하며 ‘독재자 홍보’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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