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반도 주변에서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부딪치면서 안보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북한 핵을 둘러싼 갈등에서 보듯이 한미일이라는 남방 삼각동맹과 북중러의 북방 삼각동맹 사이에는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동북아시아 안보지형도의 변화를 초래한 가장 큰 요인은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정책을 도입한 후 군사·경제적으로 급성장했다. 중국은 동북아에서 냉전시기의 옛소련을 대신하는 자리에 올라선 데 이어 미국의 패권적 질서에 도전하는 위치에까지 도달했다. 이제 중국은 덩샤오핑 이래 간직해온 외교지침인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를 내려놓고 ‘유소작위(有所作爲·할 일은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한다)’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시진핑 주석이 2012년 집권하면서 제시한 ‘중국몽(中國夢)’에는 이런 의미가 들어 있다. 시진핑은 2050년까지 종합 국력과 국제 영향력에서 세계 선두에 올라서겠다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 2020년 정보화·기계화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고 2035년에는 국방 현대화를 실현한다는 단계별 세부전략도 제시했다. 한마디로 경제와 군사 모두에서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뜻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온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장이다.
중국의 이 같은 의도를 잘 드러낸 것이 인도양 공략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인도양을 손에 넣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은 파키스탄~미얀마~스리랑카~몰디브~케냐에 이르는 주요 항구를 장악하는 ‘진주목걸이 전략’으로 해양패권 장악에 나섰다. 다급해진 미국은 일본·인도·호주 등과 함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미국이 추진하는 ‘다이아몬드 전략’은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개념에 인도를 포함해 바다에서 중국의 세력팽창을 차단하자는 것이다. 사정은 남중국해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무인도를 군사기지화해 서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해상물류 거점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중국이 힘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에서 해양패권을 추구하는 것을 미국이 가만히 둘 리 없다. 남중국해 인공섬 부근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는 한반도 안보지형에도 중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지금 북한 핵문제가 꼬이고 있는 것도 그동안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로 군림해온 미국의 힘이 떨어지는 가운데 중국의 국력이 커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미중 대결구도가 심화되면 우리는 그 사이에 끼여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과 맞닥뜨려야 할 수도 있다.
중국의 부상은 글로벌 경제지형마저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중국은 육상·해상 실크로드 경제권을 구축하기 위한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는 단순히 경제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투자 프로젝트가 아니다. 여기에는 2차 대전 이후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미국 중심의 국제경제질서인 브레턴우즈 체제를 흔들어놓겠다는 중국의 포석이 깔려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자유진영의 리더가 된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을 내세워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했듯이 중국도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양국 간 무역갈등이 확산되는 배경에도 이 같은 국제경제질서 주도권 다툼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제조업 육성정책인 ‘제조 2025’와 관련된 첨단기술 제품을 관세부과 리스트에 올려놓은 데는 무역역조 시정이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노림수가 숨어 있다. 이제 우리에게 중국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됐다.
시선을 내부로 돌려봐도 상황은 만만찮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적폐청산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우면서 미래 대비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부처마다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해외자원개발과 4대강, 역사 교과서 국정화 등 온통 지난 정권의 잘못 들추기에 여념이 없다. 이로 인해 국가 시스템 개선이라는 적폐청산의 본래 취지는 퇴색되고 오히려 국론분열 등 부작용만 부채질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성장동력을 찾는 작업도 지지부진하다. 조선 등 우리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면서 신산업 육성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규제의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경쟁국들은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민관이 협력체제를 구축해 총력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는 갑을관계 청산과 지배구조 개선 등에 매달리느라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으로 기업의 부담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노동계 쪽으로 확 기울어진 정부의 스탠스로 인해 노동개혁이라는 말은 아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 기업들이 미래 준비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안보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하루가 다르게 지형도가 달라지고 있다. 미중 간 마찰이 심해지면서 동북아 안보환경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태이고 차세대 기술개발을 주도하기 위한 국가들 간의 경쟁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여기서 자칫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디디면 우리는 천 길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올바른 좌표 설정이다. 우리는 지금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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