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으로 인한 ‘자연의 반격’이 미술관 문까지 닫게 했다.
서울 성동구 금호로에 위치한 어린이미술교육 전문 헬로우뮤지움이 폭염을 피해 미술관으로 피난 온 족제비 다섯 마리 때문에 지난 3일부터 한시적 휴관을 단행했다. 지난달 13일에 여름방학 특별전 ‘헬로 초록씨’를 갓 개막한데다 어린이 관객이 몰리는 방학 중이라 이례적인 조치다.
사연은 이렇다.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9.6도까지 치솟아 기상 관측 1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다음날인 2일 밤. 열대야를 피해 어미 족제비 한 마리와 새끼 네 마리 등이 미술관 안으로 잠입한 것이 CCTV에 포착됐다. 김이삭 헬로우뮤지움 관장과 학예연구사들은 족제비 여러 마리를 동시에 생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전격 휴관을 결정했다.
휴관을 공지한 미술관 측은 생태전문가인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박종무 평화와생명동물병원 원장, 동물보호단체인 동물권행동 카라 등에 도움을 요청했다. 족제비는 너구리 등과 마찬가지로 도시에서 인간과 공생하는 야생동물이며 쥐와 작은 새를 잡아먹을 뿐 유해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죽여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미술관을 직접 방문한 전문가들은 지하실 쪽으로 들어온 길을 역추적해 자연스럽게 나갈 수 있는 동선을 유도했다. 무더위에 또다시 미술관으로 침입할 수 있기에 최악의 경우 지하창고의 4㎡ 남짓한 공간을 내줘 ‘공존’을 모색하기로 했다. 김 관장은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지를 스스로 떠나온 경우라 잡아서 숲으로 보내는 강제 이주를 택하면 생존 확률이 낮다고 한다”면서 “아이들의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관객과 족제비가 대면하지 않게 하되 더위가 한풀 꺾여 동물들이 떠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평화로운 공존’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번 헬로우뮤지엄 휴관은 올여름의 기록적 폭염 또한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원인이고 진행 중인 여름방학 특별전 ‘헬로 초록씨’의 주제가 환경 문제여서 울림 있는 시사점을 전한다.
미술작가 김지수와 메이커 김선명이 협력해 미술관 1층에 설치한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의 경우 관객에게 이끼와 공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린이 관람객이 빗물을 흡수해 지구를 지키는 이끼를 직접 보고 만지며 관찰할 수 있다. 손채수 작가는 자연에서 구한 재료들로 곡식과 동물을 그려 함께 살아갈 존재들을 일깨우고 민주 작가는 가상의 숲 속 생명체 ‘플러피’를 통해 친근함을 더한다. ‘작업의 목적’팀은 2층 전시장 전체를 북극곰이 사는 빙하 지역으로 바꿔놓았다. 빙하 같은 하얀 구조물을 에워싼 물색 푸른 비닐 위에 인간이 쓰고 버린 플라스틱 용기와 쓰레기가 가득하다. 관람객은 낚싯대 형태의 기구로 플라스틱을 주워 올릴 수 있지만 작가들은 쓰레기를 없애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체감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줍고 건져내기 어렵게 도구를 제작했다.
작은 야생동물에게 닥친 재난이 언젠가 ‘나비효과’처럼 인간도 덮칠지 모를 일이다. 김 관장은 “5일 밤부터는 족제비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유아교육과 관련된 보육지원센터의 자문을 구한 다음 이르면 오는 9일 재개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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