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은 유럽에서도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 중 하나입니다. 일례로 500ml 생수 한병을 편의점에서 구입할 경우 우리돈으로 4,000원 이상을 내야 할 정도입니다. 여행자의 가벼운 호주머니를 더욱 가볍게 만드는 이 도시에서 배낭여행객들은 코펜하겐카드라는 만능치트키로 생존해왔습니다. 코펜하겐카드는 24시간권, 48시간권, 72시간권 등 정해진 시간동안 70여개의 관광지를 무료로 입장하고 도시 외곽의 교통까지 이용할 수 있는 여행상품입니다. 다만 카드의 가격도 무시무시합니다. 24시간권이 대략 7만원, 48시간권이 10만원, 72시간권이 11만8,000원 가량합니다. 코펜하겐에 자리한 각종 궁전들과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놀이공원 등을 빠짐 없이 가고자 할 경우 이 카드는 가성비가 끝내줍니다. 코펜하겐의 경우, 웬만한 관광명소들의 입장료가 1만5,000원~2만원 가량하니까요. 이 카드는 심지어 도심에서 공항까지 가는 열차도 무료로 탈 수 있어 카드를 시작하는 시점만 잘 맞추면 식비 외에는 다른 비용을 지출할 필요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배낭족들은 48시간 혹은 72시간권을 구매한 뒤 알차게 보고 가는 방법을 택합니다. 코펜하겐 카드를 선택하는 여행자에게는 특별히 전할 짠물의 기술이 없습니다. 짠물족에게는 이 카드 하나만으로도 이미 과소비를 한 것이니까요.
코펜하겐 카드를 사지 않는다면 어디를 가야 돈을 가장 적게 쓰면서 핵심적인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 지극히 주관적인 추천이 들어갑니다. 코펜하겐 도심에는 무려 3개의 궁전이 있습니다. 과거 왕이 거주했거나 현재 거주하는 궁전들이고 명칭은 크리스티안보르, 아말리엔보르, 로젠보르입니다.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이 3개의 궁전 모두 입장료를 90~95크로네(1만5,000~1만6,000원) 가량 받는데 모두 비추입니다. 특히 크리스티안보르궁전은 화려한 외관과 달리 볼거리가 심각하게 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오죽했으면 가장 큰 볼거리가 왕을 알현하는 방이겠습니까. 주방, 마굿간 등 궁전에 딸려 있는 건물들도 공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돈을 별도로 받습니다(물론 통합티켓으로 사면 조금 더 저렴합니다) 들어가보면 “이걸 돈을 받는 게 말이 돼”라고 할 정도로 황당합니다. 마굿간은 왕이 쓰던 마차 십여 대가 전시돼 있고 주방은 골동품같은 주방기기들이 걸려 있는 수준입니다. 이들 궁전 가운데는 로젠보르궁이 그나마 나은 수준인데 여긴 왕가가 보유한 미술품, 금속공예품 등 보물을 보관하고 전시하고 있습니다. 미술품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만 추천하겠습니다.
그럼 어디를 가야 할까. 우선 돈을 쓰지 않겠다면 뉘하운 운하부터 바닷길을 따라서 걷는 산책 코스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뉘하운 운하는 옛 모습을 잘 보존한 건물들이 눈길을 사로 잡습니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다리 하나가 보이는데 크리스티안스하운으로 연결됩니다. 여름에 이 다리를 걷다보면 코펜하겐 시민들이 수영복을 입은 채 여기저기 모여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리 수영복과 타월을 챙겨왔다면 코펜하겐 시민들에 섞여 따스한 햇살 속에서 수영을 하는 건 어떨까요. 크리스티안스하운도 여기저기 둘러보기에 좋습니다. 이 곳은 과거 사회운동가,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동네인만큼 그래피티를 여기저기서 찾아 볼 수 있고 독특한 외양의 건물들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티안스하운을 나온다면 다시 다리를 건넌 뒤 바다 옆 산책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보길 권합니다. 아말리엔보르 성 앞의 공원 벤치에 앉아 사색을 즐기거나 해안산책로 인근 벤치에서 운하투어용 보트를 구경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조금 더 북쪽으로 가면 별 모양의 옛요새 카스텔렛과 코펜하겐의 상징인 인어공주상이 나옵니다. 인어공주상 앞에는 늘 관광객이 북적대는데 실물을 본 뒤 실망하는 관광객들이 많은 편입니다. 웅장하거나 화려한 맛이 없어서일까요. 카스텔렛 요새는 군인들의 숙소로 사용되지만 주변은 공원으로 꾸며져 산책하기에 더 없이 좋습니다.
점심을 먹겠다면 쇼핑 중심가인 스트뢰에로 걸어가면 많은 카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카스텔렛 요새에서 스트뢰에까지는 걸어서 20분이면 도달합니다. 스트뢰에에는 많은 카페들이 있는데 가격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카페에 들어가면 데니쉬 페이스트리를 한번 즐겨보는 것이 좋습니다. 데니쉬 페이스트리는 겹겹이 쌓은 빵 반죽에 과일, 잼 등을 채운 덴마크의 대표 음식인데 가격은 대략 3,000~4,000원 가량 합니다. 커피와 데니쉬 페이스트리를 테이크아웃으로 가져온 뒤 바닷가 산책로의 벤치에서 가볍게 즐기는 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스트뢰에에는 루이비통 등 명품 매장은 물론 로열코펜하겐, 기요 옌슨 등 덴마크의 유명 도자기가게들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격은 상당히 비쌉지만 한국에서 구매하는 것 보다는 저렴합니다. 5만원 이상 구입시 세금환급도 가능하고요. 주머니 가벼운 짠물족은 아이쇼핑을 하고 지나오는 걸로. 덴마크의 상징 레고는 한국보다 가격이 조금 더 쌉니다. 제가 비교해 본 제품 몇 가지를 기준으로 하면 최소 5~10% 가량 더 싼 걸로 보입니다. 레고 해리포터시리즈 미니피규어의 경우 이곳에선 30크로네(5,100원)에 판매 중인데 국내에선 인터넷 최저가 기준 6,000원 정도입니다. 덴마크 레고매장은 특히 일부 상품의 경우, 50% 오프 행사도 진행 중인데 이 경우 한국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덴마크 빌런시에 자리한 레고랜드내 매장보다 이곳 코펜하겐 레고매장에서 더 저렴한 품목이 많은 것도 눈에 띕니다.
유료입장지 가운데는 두 곳을 추천합니다. 한 곳은 각종 여행가이드북에서 가장 추천하는 곳인 티볼리 가든인데 저도 개인적으로 티볼리 가든은 꼭 한번 가보길 추천합니다. 1843년 개장한 이 놀이공원은 입장료가 120크로네(2만원), 자유이용권이 230크로네(4만원) 가량 됩니다. 놀이기구를 개별적으로 탈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등급별로 가격이 다릅니다. 가장 초보적인(시시한) 놀이기구의 경우에는 30크로네(5,100원) 정도이고 이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놀이기구는 60크로네(1만원), 가장 신나는 놀이기구는 90크로네(1만5,000원)입니다. 결국 3단계 놀이기구 3개 이상을 탄다고 하면 자유이용권이 더 저렴해지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3개 이상 탈 거리들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곳의 가장 유명한 놀이기구는 스타 플라이어로 공중에 매달린 줄에 의지해 지상 80미터 위까지 올라가며 스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100년 이상된 목조 롤러코스터와 롯데월드의 자이로드롭과 유사한 ‘골든타워’ 등도 인기 있는 놀이기구입니다. 여름철 티볼리 가든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음악 공연이 열리는데 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또 다른 한 곳은 코펜하겐 근교인 훔레벡에 자리한 루이지애나 미술관입니다.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40분 가량 걸리는 이 곳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물 101곳’에서도 선정된 바 있습니다. 미술관에는 현대미술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자연친화적으로 건설된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미술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미술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미술관이 지향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는 미술 작품 감상뿐 아니라 시간 여유를 갖고 주변 풍경도 충분히 즐기다 오길 추천합니다. 한국 관광객들은 오전에 이곳에 온 뒤 점심 뷔페를 하며 풍경을 즐기다 오후 늦게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입장료는 125크로네(2만1,000원)이며 교통비까지 포함하면 4만원 이상을 써야 합니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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