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했다가 최근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한 최영미 시인이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이 재판은 그의 장례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최 시인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미투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은 시인의 소송에 대해 오래된 악습에 젖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불쌍한 사람의 마지막 저항이라고 생각한다“며 “민족문학의 수장이라는 후광이 그의 오래된 범죄 행위를 가려왔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재판에는 개인의 명예만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여성들의 미래가 걸려있으므로,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지난해 고은 시인의 성추행을 암시하는 시 ‘괴물’을 발표했다. 최 시인은 지난 2월 JTBC에 출연해서도 재차 성추행 사실을 알렸고 이후 동아일보에 당시 상황이 자세히 담긴 ‘육필 원고’를 보내기도 했다.
고은 시인은 지난달 17일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 시인과 박진성 시인에게 각각 1,000만원, 동아일보사와 기자에겐 2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고은 시인은 지난 3월 외신을 통해 “나는 최근 의혹에서 내 이름이 거론된 데 대해 유감이며, 나는 이미 내 행동이 초래했을지 모를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뉘우쳤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몇몇 개인이 제기한 상습적인 비행(habitual misconduct) 비난은 단호하게(flatly) 부인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사실과 맥락을 잘 알 수 없는 외국의 친구들에게는 부인과 나 자신에 부끄러운 어떤 짓도 하지 않았음을 밝힌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고은 시인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규탄하고 향후 공동대응 방침을 밝히는 자리로 마련됐다. 기자회견에는 최 시인 외에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최 시인 소송대리인인 조현욱 한국여성변호사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상대로 ‘무고죄’ ‘명예훼손죄’ 등 역고소를 감행한 것과 더불어 피해자와 증언자를 위축시키려는 ‘2차 피해’의 전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고은 시인을 향해 “문학계 거장으로 군림하며 오랜 기간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여성 문인들을 착취했던 과오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며 당장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멈추고 철저히 반성하라고 요구했다. 미투시민행동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개설되는 ‘고은 시인의 성폭력 피해자 및 목격자 제보센터’ 등과 연대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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