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식(65·사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문재인 정부 복지정책의 산파다. 조 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국정운영 중간평가’ 외부전문가평가단의 사회 부문 평가분과위원장을 맡아 당시 시민사회수석이었던 문 대통령과 알게 됐다.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 때는 ‘담쟁이포럼’에서 문 대통령을 도왔다. 지난해에는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인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포용사회분과위원회 분과위원장을 맡았다. 참여연대 설립 멤버이기도 한 진보 성향의 학자다.
그의 눈에 비친 최저임금은 어떨까. 조 원장은 “최저임금 인상은 필요하다”면서도 “우리나라의 독특한 경제 메커니즘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은 정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포용복지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포함한 포용성장과 맥을 같이 하지만 세밀한 전술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조 원장은 최저임금의 단계별·지역별 차등적용이 가능하다고 봤다. 최저임금과 고용쇼크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지난달 7일 집무실에서 그를 만난 뒤 최근까지 수차례의 추가 질의를 통해 복지와 저출산·국민연금 등에 대한 해법을 들어봤다. /대담=김영필 경제부 차장 susopa@sedaily.com
최저임금에 대한 조 원장의 시각은 1960~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농촌에서 빠져나온 인구가 도시로 들어왔다. 이 시기의 중견·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공식 부문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특별한 교육이나 기술이 없어도 일할 수 있는 비공식 부문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1959년에는 농촌의 노동인구가 전체의 59%였어요. 이들이 도시로 넘어가면서 비공식 부문이 많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도 없고 또 10인 미만 기업은 노조를 만들 수도 없었어요. 2~3명 데리고 일하는 가내수공업이 많았는데 이들이 지금의 소상공인이에요. 외환위기 이후 해고된 이들이 퇴직금을 받아 자영업자로 들어왔지요. 노동의 이중구조가 생긴 것입니다.”
조 원장은 이들 중 상당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그는 “대기업은 최저임금을 그런대로 맞춰 해나갈 여유가 있지만 장하준 교수가 얘기했듯 이처럼 밀려난 소상공인, 이 사람들이 자본가냐”라며 “이들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은 단계별로 하거나 지역별로 다르게 하는 보완을 하는 게 좋겠다”고 강조했다. 7월 방한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선진국 자영업자 비율이 12% 수준인데 한국은 25% 이상”이라며 “다른 나라 같으면 자본가가 될 수 없는 사람들, 특히 너무 영세해 스스로를 착취하는 이들까지 자본가로 만들어놓고 ‘최저임금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니 반발이 없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물론 최저임금은 필요하다. 근로시간 단축도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는 “최저임금은 기본적으로 생존의 문제”라며 “잠도 충분히 자고 가족과 관계를 많이 가질수록 오래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은 생존, 근로시간 단축은 가족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제도라는 얘기다. 다만 제도는 정교해야 한다는 게 조 원장의 판단이다.
“최저임금 개념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들을 살려주려는 의미이고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같은 취약계층을 지키자는 의미예요. (적용할 때는) 좀 더 정교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교함은 장애인 최저임금에서 잘 드러난다. 정부는 4월 중증장애인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될 수 있도록 법을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 원장은 “다른 나라들은 대체로 장애인 돌봄고용 시 최저임금 적용을 면제해준다”며 “(비장애인 근로자보다) 돈을 적게 받더라도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장애인이 일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더라도 일을 통해 사회활동과 재활의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원하는 장애인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현실을 감안해 “장애인이 요구할 때는 최저임금 적용 의무를 면해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 장애인이어도 생산성이 어느 정도 받쳐주면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조 원장은 “외국의 경우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80% 정도 수준으로 생산성을 내면 최저임금을 인정한다”며 “장애인 근로능력, 생산성 평가와 기준 설정 등 정교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출산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조 원장은 심각한 저출산의 원인을 “행복한 삶에 대한 보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출산은 여성의 선택의 문제”라며 “아이를 낳아도 나같이 불행한 삶을 살 것 같다고 생각하면 누가 낳겠느냐”고 분석했다.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는 고민이 사라진 결과가 지금의 저출산이라는 말이다.
조 원장은 “결국 행복한 삶에 대한 요소를 사회가 많이 만들어줄 때 출산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여성이 선뜻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가 어려움을 덜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10년간 저출산 예산을 100조원 넘게 들였는데도 출산율이 떨어졌다는 비판의 기저에는 ‘인구를 조절할 수 있다’고 보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깔려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여성이 애 낳는 기계가 아닌데 기계적으로 아이를 더 낳으면 지원을 더 해준다는 식의 접근은 궁극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해결방법은 ‘경단녀(경력단절녀)’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출산휴가·육아휴직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낳고 몇 년이 지나도 다시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보장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아이를 기르는 것은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서울은 출산율이 0.84명인데 국공립 어린이집이 전체의 90%를 차지하는 세종시는 출산율이 1.6명이라는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며 “‘내 아이’라기보다 ‘우리 아이’로 보고 함께 아이를 기른다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본소득 연구에도 착수해야 한다는 게 조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보편적 복지로 밑단을 깔아주지 않으면 평균 30~40배에 달하는 소득격차를 어떻게 줄여갈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진다”며 “앞으로 20~30년 내 기본소득 실험이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누구에게 얼마나 세금을 걷고 누가 어떻게 나눠줄 것인지 등 거버넌스도 중요한 문제”라며 “20년 후를 내다보려면 지금부터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준비 중인 중장기 복지 비전 ‘사회보장 2040’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그는 ‘사회보장 2040’에 민간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 원장은 계획 수립의 가장 큰 변수로 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를 꼽았다.
“2040이니 20년 후까지 바라보는 건데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큰 변수가 4차 산업혁명과 남북관계예요. 인공지능(AI)의 경우 가속도가 붙어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고 이 경우 세금뿐 아니라 복지전달 체계도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남북은 이렇게 갑자기 바뀌었을 때 앞으로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이 두 가지 변수가 중장기 복지 밑그림을 그리는 데 가장 큰 변수입니다.”
/정리=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사진제공=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약력]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1953년 부산 △1971년 부산고 △1976년 서울대 사회사업학 △1980년 서울대 사회복지학 석사 △1991년 서울대 사회복지학 박사 △1991~2018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1994~1997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2004~2005년 대통령 국정평가위원회 사회분과위원회 분과위원장 △2012~2013년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 △2017~2018년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포용사회분과위원회 분과위원장 △2018년3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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