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통화위기는 미국 등 선진국이 양적 완화 정책을 거둬들이면서 급속히 확산되는 양상이다. 글로벌 부채는 2007년 115조9,000억달러에서 2016년 164조4,000억달러로 10년 새 48조달러나 폭증해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한층 가팔라지고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가세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과도한 부채에 따른 금융불안이 실물경제에 전염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는 판이다.
10년 전 위기 탈출의 모범국으로 평가받던 우리도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가계부채는 2008년에 비해 두 배로 증가했고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거품 현상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막대한 부동자금이 집값을 끌어올려 사회적 통합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고용·소비·투자 등 경제지표는 10년 전 수준으로 후퇴해 걱정을 키우고 있다. 위기 극복의 일등공신이었던 자동차·조선은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했고 신성장동력 발굴은 오리무중이다. 근본적 구조개혁을 외면한 채 구조조정마저 미룬 값비싼 대가가 아닐 수 없다. 이런데도 정부가 국민 세금을 쏟아붓는 임시처방에만 골몰한다면 경제위기를 예방하는 든든한 보루마저 무너지며 재정위기를 맞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당국자들은 항상 이번에는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정책 불신만 키운다면 위기의 불씨는 어디서 되살아날지 모른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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