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에 피싱사이트를 만들어 암호 화폐 거래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훔친 뒤 거액의 암호 화폐를 빼돌린 일당이 한미 공조수사로 덜미를 붙잡혔다. 암호 화폐 관련 피싱 범죄 적발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동부지검 사이버수사부(부장검사 김태은)는 디지털게이트코리아 대표이사 김 모(33) 씨를 컴퓨터 등 사용 사기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 침해 등)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고 13일 밝혔다. 김 씨 의뢰로 피싱사이트를 제작해 범행을 공모한 이 모(42) 씨는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본지 9월7일자 29면 참조
검찰에 따르면 일당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피싱사이트를 개설해 거래소 회원 61명이 보유한 암호화폐 약 239만 리플을 본인 계정으로 넘긴 뒤 현금화해 9억 원 가량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일당은 암호 화폐 리플 보유 회원들에게 “보유한 리플을 다른 사이트로 옮기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거짓 내용을 담은 e메일을 발송하는 수법으로 회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확보했다. 이후 확보한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회원들의 전자지갑에서 리플을 김 씨의 계정 등으로 이체했다.
특히 이들은 수사기관의 추적이 어려운 해외 호스팅업체를 동원해 피싱사이트를 개설하고 이메일 발송에 이용하는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 또 확보한 회원들 개인정보로 리플을 다른 종류의 암호화폐로 전환하는 이른바 ‘암호화폐 세탁 과정’을 거친 후 현금화해 사정기관 수사를 따돌리려 했다.
김 씨는 2014년 개설된 국내 첫 리플 거래소 운영자로 이듬해 암호 화폐 해킹 피해를 신고했으나 해커 추적에 실패해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사 범행을 저지르더라도 추적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범죄 수익 대부분을 생활비로 소진해 암호화폐나 현금 잔고가 없는 상태다. 남은 재산에 대해서는 이번 암호화폐 범행이 현행 범죄수익환수법이 규정하는 몰수·추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환수가 불가능하다.
검찰 관계자는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상에는 계좌 지급정지나 피해구제 대상도 ‘자금의 송금·이체’에 한정하고 있어, 암호화폐 관련 사기의 경우 적용이 불가하다”며 “법률 개정 등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