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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종전선언 '추진'에서 '합의'로 바꾼 이유 뭔가

남북이 공동으로 유엔에 제출한 판문점 선언 영문 번역본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판문점 선언에 담긴 종전 선언 관련 내용이 ‘추진’에서 ‘합의’로 바뀌어서다. 청와대의 영문 번역본에 실린 ‘(종전 선언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actively pursue)’는 표현이 사라지고 북측이 주장하는 ‘합의(agree)’로 대체하는 내용이 유엔에 제출됐다. 정부를 제외하고 우리 국민 아무도 모르게 내용이 국제사회에 알려졌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남북이 공동으로 제출한 것이니만큼 입장에 따라 표현이 바뀔 수는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의 물꼬를 트겠다는 정부의 의도를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렇다고 본질을 바꿔서는 안된다. 판문점 선언 국문본이나 국회에 제출된 비준동의안 어디에도 ‘합의’라는 표현은 없다. 그렇다고 북측이 완전한 비핵화 이행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반도 안보 환경에 어떤 변화도 없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한미관계에도 긍정적일 리 없다. 미국의 비핵화 협상 기본전략은 ‘선 이행, 후 보상’에서 바뀌지 않았다. 북측이 핵 리스트 제출을 포함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에 나서야만 종전 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이 유엔에 제출한 ‘연내 종전 선언 합의’는 이런 미국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남북연락사무소나 철도 연결 등 현 정부의 경협 행보를 달갑지 않게 바라보는 미국으로서는 유쾌할 리 없다. 한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이유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짧은 시일 안에 이뤄질 수 없다. 북측으로부터 핵 리스트를 넘겨받아 검증하고 핵 위협이 재발하지 않는 장치를 마련하려면 대화의 끈을 유지하되 제재와 압박도 유지하는 장기전이 필요하다. 한미공조가 확고하게 작동해도 쉽지 않은 일인데 우리 스스로 틈을 보인다면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남북관계를 서두르다 비핵화를 놓치는 우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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