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경영 총괄로 나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미국 관세 폭탄 문제와 미래 자동차 사업 공동전선 구축 등 그룹의 생존을 좌우할 현안부터 챙긴다.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미국 정부 인사와 협의에 나서는 한편 다음달은 파리모터쇼로 무대를 옮겨 현대차그룹의 미래 차 비전을 밝힐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16일 현대차그룹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정 수석부회장은 미국으로 해외출장을 떠난다. 당초 남북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재계 총수들과 함께 방북할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정 수석부회장은 눈앞에 닥친 관세 폭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행을 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수입차에 대한 25%의 관세 부과를 고려하고 있다. 현실화될 경우 가뜩이나 줄고 있는 미국 자동차 수출은 물론 현대차와 기아차(000270)가 약 3조5,000억원 수준의 관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이는 현대차의 연간 영업이익과 비슷한 규모다. 그룹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 기간에 정 수석부회장은 미국 행정부 및 의회 고위인사들과의 일정이 예정돼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 날 정 부회장이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 등과 면담이 예정돼 방북 수행단에서 빠졌다고 발표했다. 정 수석부회장이 미국과 협의를 통해 관세 부과 대상에서 면제되거나 다른 나라들보다 관세율을 획기적으로 낮출 경우 그룹 경영에서 존재감이 한층 커질 수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미 관세 폭탄 문제를 협의한 후 현대차의 미래 자동차 사업에 가속 페달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모빌리티 체인을 구축하고 있는 정 수석부회장이 다음달 열리는 파리모터쇼에서 유럽 자동차 업체와의 협업을 통한 미래 자동차 사업의 청사진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2년마다 열리는 파리모터쇼에서는 세계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는 유럽의 주요 브랜드는 물론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신차와 신기술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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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56개 계열사의 경영을 총괄하게 된 정 수석부회장은 미래 설계와 함께 글로벌 판매량 감소라는 위기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상반기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7%, 기아차는 16% 줄어들었다.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되기 전에 정 수석부회장이 그룹 경영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현대차 내외에서 일고 있는 이러한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는 정 수석부회장이 급격히 팽창할 친환경 및 미래 차 시장에서 확실한 비전을 확보하며 위기를 벗어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급격하게 판매량이 줄어든 중국 시장에서 정 수석부회장이 지난 6월 인공지능(AI) 영상인식 기술을 보유한 중국 스타트업 딥글린트와 협업하고 바이두의 자율주행차 연구 사업 ‘아폴로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미래 비전을 밝혔다.
최근 유럽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고 7월에는 고성능 브랜드 N 가운데 ‘i30 N’을 현지에 출시하기도 했다. 올해 파리모터쇼에는 현대차가 i30 N과 벨로스터 N에 이어 i30 패스트팩 N을 추가로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1년간 중국과 미국·이스라엘·인도 기업 스타트업 및 유망 기업과 신기술· 신규 비즈니스를 위해 투자 및 협약 22건을 단행했다. 이 가운데 유럽 업체는 이탈리아 연료전지 업체 솔리드파워 한 곳에 불과하다. 파리모터쇼를 전후해 현대차그룹에서 유럽의 유망 기업과 자율주행 등 미래 차 관련 협업이나 투자가 나올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자동차와 자율주행 유망 업체들이 합종연횡하고 있는 분위기를 볼 때 ‘현대차-아우디 수소차 동맹’급 협업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정 수석부회장이 파리모터쇼 현장을 직접 챙길지에 대해서는 그룹 내에서 조율하는 중”이라며 “다만 유럽 출장이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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