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일만 하고 기업 일은 기업에 맡겨야 합니다.” 최근 갑작스럽게 은퇴 선언을 한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지난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AI)대회’에서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국영기업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민영기업 제재에 나선 중국의 시진핑 지도부를 겨냥해 “시장에 간섭하지 말라”며 쓴소리를 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날 마 회장은 “시장이 스스로 AI 같은 새로운 산업의 발전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 진보를 위해서는 도태하는 분야가 있게 마련”이라며 “뒤처지는 세력을 보호하는 행위가 혁신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AI·무인운전 등이 택시업에 준 충격을 예로 들며 “택시업이 사라지느냐 아니냐는 시장이 결정한다.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교통안전이나 인명 관련이고 어떤 업종이 다른 업종으로 대체되는 것은 시장이 판단할 일”이라고 단언했다.
이날 발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부 당국이 중국의 신경제 기술 기업에 대한 규제를 보다 완화해 적극적인 기술 개발과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확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촉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마 회장이 지난 수년간 국제포럼과 공공행사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해온 발언과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정가와 관영매체에서 민영기업 퇴장론이 불거지는 상황에 마 회장의 이번 발언은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다. 시장에서는 그가 파장을 충분히 고려한 의도된 발언을 했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 중국 금융평론가 우샤오핑은 “중국 사영기업은 이미 공유경제 발전을 위해 역할을 다했고 이제는 서서히 경기장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민영기업 퇴장론에 불을 지폈다. 중국 정가에서도 격화하는 미중 무역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으려면 지도부가 강력한 통제권을 쥔 국영기업이 나서 경제의 중심을 잡아야 하며 민영기업은 공산당의 지도력에 철저히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올해 들어 상장기업 20곳이 국유자본에 사실상 흡수되는 등 국영기업의 민영기업 인수 확대 움직임도 확인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의 이번 발언이 세간에 만연한 마윈 퇴진 음모론과 연관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 신경제 1세대인 마 창업자가 아직 54세의 젊은 나이임에도 내년에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은 정치적 소용돌이를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 음모론의 골자다. 중화권 매체에서는 중국 정가 지도자의 여러 숙청 사례와 정치인과의 부패에 연루된 기업인의 잇따른 구속, 연예인 판빙빙 구금설 등과 맞물려 마 회장이 이런 처지를 피하기 위해 조기 은퇴를 선언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조기 퇴진에 아쉬움을 느끼는 마 회장이 정부 압력에 대해 은유적 비판을 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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