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광석(1964~1996년)의 노래가 오랜 세월 폭넓게 사랑받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쓸쓸하고도 처연한 멜로디는 일상의 쳇바퀴만 도느라 잃어버린 우리의 감성을 아련하게 자극한다. 소박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가사는 지난날의 추억을 하나둘 소환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김광석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생애 주기별로 ‘맞춤형 멜로디’를 선사한 음악인이었다. 뽀얀 피부에 어울리지 않는 시커먼 군복을 입은 청년은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며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달랬다.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디뎠을 때는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인생의 의미를 곱씹었다. 삶의 무게에 지쳐가는 중년에는 ‘일어나’를 노래하며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고 세상의 순리를 따르게 된 이순(耳順)에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와 함께 지난 세월을 차분히 복기했다. 그의 노래와 더불어 일생을 보냈으니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렇게 우리 인생의 주요 꼭짓점마다 아름다운 선율을 선물하고 떠난 김광석의 고향은 대구다. 지난 1964년 1월 평범한 가정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김광석은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4년 동안 대구에서 살았다. 그가 옹알이를 트고 걸음마를 시작한 대구 중구의 대봉동에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하 김광석 길)’이 있다. 지하철 2호선 ‘경대병원역’ 3번 출구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이곳은 대구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2010년 처음 조성됐다. 원래는 인적조차 드문 어두컴컴하고 낡은 거리였으나 김광석이 남긴 노래와 추억이 깃들면서 주말에만 평균 5,000명이 다녀가는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350m의 골목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담벼락에는 김광석 특유의 환한 미소를 포착한 지역 예술가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거리 곳곳에서는 그의 대표곡들이 번갈아 가며 울려 퍼진다. ‘김광석 길’ 중간쯤에 위치한 야외 공연장은 구청에 미리 신청만 하면 일반 시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객(歌客)이 남긴 노래를 음미하며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다 보면 거리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김광석 스토리 하우스’와 만난다. 문자 그대로 인생 이야기가 담긴 ‘김광석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공간에는 그가 공연 때 사용했던 악기와 친필 일기, 미공개 사진과 LP 음반 등이 전시돼 있다. 김광석은 1995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있어요. 그 상처는 누군가 반드시 보듬어 안아야만 해요. 제 노래가 힘겨운 삶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비상구가 됐으면 해요.” 김광석의 말과 노래로 꾸며진 거리와 전시관을 가득 메운 방문객들을 보노라면 비록 자신은 너무 이른 나이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지만 살아생전 그가 품었던 소망은 세월이 흘러 멋지게 성취됐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구 시민들과 외지에서 찾아온 여행객들은 김광석을 추억하며 상처를 보듬고 희망을 되찾고 있다. 김광석 스토리 하우스 역시 김광석 길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입장료는 없으며 운영 시간은 오전10시부터 오후7시까지다. 다만 동절기(11월~3월)에는 한 시간 일찍 문을 닫는다.
대신동에 있는 서문시장도 대구가 자랑하는 명물 중의 하나다. 전통시장이라는 이미지 탓에 젊은이들의 발길이 뜸했던 곳이지만 2016년 6월 야시장이 개장하면서 1년 365일 시끌벅적한 관광지로 거듭났다. 점포 숫자만 5,000개가 넘고 모든 생활필수품이 다 있지만 서문시장의 백미는 역시 먹거리다. 대구 사람들이 좋아하는 납작만두는 반드시 맛봐야 할 음식이다. 시장 안의 어느 식당, 어느 노점 테이블에 앉아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납작만두는 노릇노릇하면서도 바삭바삭한 식감이 끝내준다. 간장에 양파를 넣어 만든 소스와 만두 위에 보기 좋게 뿌려진 고춧가루는 다소 심심할 수 있는 맛을 제대로 잡아준다. 여기에 국물이 시원한 잔치국수까지 주문하면 가격 대비 만족도 100점의 식사를 할 수 있다.
두산동에 위치한 수성못까지 둘러보면 ‘대구 한나절 코스’가 훌륭히 완성된다. 지역을 대표하는 호수공원인 이곳에는 2㎞의 둘레길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5년 조성된 수성못은 원래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로 활용됐으나 지금은 바로 옆에 소규모 놀이공원까지 있는 문화·레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오리배를 타고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경치를 감상할 수도 있어 연인들의 도심 데이트 장소로도 그만이다. 야간에는 도시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분수쇼’도 펼쳐진다. /글·사진(대구)=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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