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섭리가 뭘까 싶은 계절이다. 언제 더웠냐는 듯 찬바람 불기 시작한 날씨가 꼭 시뻘겋게 타오르던 열기를 삭히고 검은 덩어리만 남겨놓은 숯 같다. 28년 이상 숯으로 작업하는 ‘숯의 화가’ 이배(62·본명 이영배)는 죽은 듯 시커먼 그 숯에서 역설적으로 생(生)의 섭리를 끄집어냈다. 불어로 ‘불의 근원(Issu du feu)’을 뜻하는 그의 대표작은 캔버스에 숯을 붙인 다음 표면을 갈아낸 가루가 빈틈을 메우게 한 후 그 위를 광이 날 정도로 섬세하게 닦아 완성하는 작품이다. 검은색인 것 같으나 그저 검지만은 않은 것이 삼라만상 오묘한 이치를 머금은 듯하다. 다이아몬드의 각 면이 빛을 비추는 것처럼 조각조각의 숯이 각각의 빛을 내뿜는 모습이 신비로울 정도다. 따지고 보면 숯도, 다이아몬드도 실제 그 구성원소는 탄소(C)로 동일하다.
“숯은 한 가지의 검은색이 모든 색을 포용해 100가지의 색이 들어가 있어요. ‘빛’도 머금죠. 그래서 많은 분이 제 작품을 검은색이 아닌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표현해요. 상징적으로는 ‘숯’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의 마지막 모습이에요. 현실성과 일상성을 모두 벗어버린 순수성을 지닌 물건이죠. 죽은 물건이 아니고 불을 붙이면 다시 불이 붙는, 에너지가 있는 물건이에요. 결국 제게 ‘숯’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생명의 에너지를 의미해요.”
검은색 작품 앞에서 하얗게 세버린 은발 머리를 반짝이며 이배 작가가 말했다. 추석을 맞아 잠시 귀국한 그를 서울경제신문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프랑스 정부가 영구 임대한 파리 아틀리에와 미국 맨해튼 컬렉터들 때문에 마련한 뉴욕 작업실을 비롯해 고향인 경상북도 청도와 대구까지 총 다섯 군데를 오가며 활동한다. 이배는 지난 2015년 유럽 최대의 동양미술관인 국립 기메미술관에서 한국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만 해도 자코메티·칼더·미로 등이 전시한 유럽 근현대미술의 명소인 프랑스 생폴드방스 마그재단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세계적 화랑인 파리 페로탱갤러리에서도 대규모 전시가 열렸다.
홍익대를 졸업하고 잠시 교편을 잡았으나 자유로움에 이끌려 한국 생활을 정리한 서른네 살의 이배가 프랑스에서 자리 잡은 곳은 파리 인근에 버려진 담배 제조공장이었다. 공장은 크고 시커멓고 우악스러웠다. 전기도, 수도도 다 끊긴 수천 평짜리 공장지대로 외국에서 온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어느덧 화실이 된 공장 앞에는 주유소와 목재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바비큐용 숯 한 봉지를 산 것은 우연이었다. 한 통에 2만~3만원인 값비싼 물감과 비교해 3,000원에 한 포대나 살 수 있는 숯이니, 가난한 화가에게 이만 한 그림 도구도 없었다. 그러나 숯 안의 물성을 찾아 새로운 예술세계를 연 것은 필연이었다.
“숯을 쥐었던 첫날은 학창시절에 석고를 그리듯 목탄 데생을 했어요. 숯으로 인체를 그리면서 ‘이 숯은 무엇인가’ 생각했습니다. 숯은 불에서 온 물질이자 불을 머금고 생명력을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동시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마지막 모습이 이 숯과 같지 않나 싶더군요. 물질의 일상성, 용성(用性), 현실성을 다 태우고 벗어버린 순수의 결정체가 숯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사물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나무를 태워 만드는 숯은 자연의 소멸인 동시에 순수한 자연을 상징한다. 먹을 만드는 재료도 숯이다. 숯 그을음에서 가장 미세한 분말을 모아 아교와 섞어 딴딴하게 만든 게 먹이다. 먹으로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수묵 문화권에서 온 자신을 숯에 투영했다.
“숯에 내 생각을 투영하면서 ‘나의 근본’을 되짚었어요. 내 고향에서 숯은 우물을 팠을 때 자갈과 모래를 덮기 전 맨 밑에 까는 것이고 제실 지을 땅을 다질 때도 소금과 함께 깔아 집 근처 해충과 잡초를 없애주는 존재죠. 어릴 적 시골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새끼줄에 숯을 끼워 대문 앞에 금줄을 걸었고 장 담그는 장독 안에도 숯을 넣었습니다. 정월 대보름날 밤새 달집태우기를 하고 나면 아침에 공터 한가득 숯이 쌓여 있었죠. 숯은 새로운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숯을 재료로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너무도 많았으니까요.”
1956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그를 품에 안은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과 같은 농부가 되기를 바랐다. 5형제 중 장남이니 더욱 그랬다. 삼촌의 붓과 팔레트를 몰래 꺼내 보리밭에 숨어 그림을 그리곤 하던 그가 ‘화가의 꿈’을 얘기하자 깜짝 놀란 집안 어른들이 무당을 불러 굿을 했을 정도였던, 그런 곳이고 그런 시절이었다. “미술 선생님이 미술대학 나와서 교사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한 덕에 간신히 미술을 계속할 수 있었다”며 웃음 짓더니 그는 “파리에 20년을 살다가 고향에 들렀던 어느 겨울날 맡은 기막힌 저녁 밥상의 향기가 바로 냉이 몇 뿌리를 넣은 된장국이었는데 머리는 잊었어도 몸이 냄새로, 맛으로, 느낌으로 기억하는 바로 ‘그것’에 정체성이 있는 것”이라고 되짚었다.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을 때 작가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 청도로 갔다. 감나무가 익어가는 그곳에서 툭 떨어진 감 하나를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물론 연필심 깎듯 다듬기는 했지만 예의 그 ‘숯’으로 불처럼 붉었던 감의 시들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붉게 익었다가 자연의 섭리대로 떨어져 흙 위에서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감의 미세한 변화를 시간순으로 100장의 그림에 담았습니다. 뜨겁게 타올랐다가 불길이 사그라지며 바스라지는 숯과 그런 감이 닮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섬세한 감 그림에서 추상적인 숯 작업에서는 미처 보지 못한 정교한 묘사력이 번뜩였다. 언제 더웠냐는 듯 초록 잎 사이로 붉게 익어가는 감도, 열기 감춘 숯덩이도, 사진보다 더 생생한 그림 실력도 하나같이 감쪽같다.
2000년 이후 작가는 숯가루를 뿌리는 퍼포먼스와 숯을 뭉치고 매단 설치작품 등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달 개관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아트스페이스 개관전에서도 그의 숯 설치작 ‘불에서부터’를 선보였다. 그저 보여주는 숯의 의미를 묻자 작가는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활동한 19세기 화가 제임스 A 휘슬러 얘기를 꺼냈다. 휘슬러는 영국 런던의 템스강 풍경을 유난히 즐겨 그렸고 그 작품을 본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고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불편하고 우울하고 무관심했던 안개가 휘슬러의 그림으로 인해 새롭게 보이고 오히려 로맨틱하고 ‘런던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게 됐다는 뜻이죠. 무심히 넘길 수도 있는 것을 감성적으로 승화시킨 예술의 힘이었습니다. 죽음의 상징이던 사이프러스 나무를 ‘명화’로 다시 보게 만든 고흐도 마찬가지로, 예술가들의 ‘발견’은 수없이 이어졌습니다. 제게 숯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찮게 버려지는 숯을 선택함으로써 ‘예술을 통해 만난 숯’이 달리 보이고 일상의 물건이 아닌 의미 있는 물성이 됩니다. 그게 예술가가 하는 일이죠.”
이배 작가는 예술가의 역할로 ‘발견’을 강조했고 조선 후기의 문인 유한준(1732~1811)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고 했다. 이배의 숯을 사랑하고 알게 되면 전에 없던 것이 보인다.
/고양=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He is…△1956년 경북 청도 △1972년 홍익대 회화과 졸업 △1979년 홍익대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주요 개인전 △1991년 프랑스 파리 에스파스 바토라부아르 △1996년 벨기에 브뤼셀 윌리뒤세르갤러리 △2009년 중국 베이징 금일미술관 △2011년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 △2014년 대구미술관 △2014년 프랑스 생루이 페르네브랑카재단 △2015년 프랑스 국립 기메동양미술관 △2016년 부산 조현화랑 △2018년 프랑스 생폴드방스 마그재단 미술관 △2018년 파리 페로탱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