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달 남북정상회담 때 체결된 군사합의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남북이 미국과 사전조율이 부족한 상태에서 군사합의를 하려 하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강 장관에게 전화해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사실 남북 군사합의서 내용은 미군과 유엔의 활동을 제약할 여지가 많다. 군사분계선 상공에 설정한 비행금지 구역만 하더라도 한미의 정찰 능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이런 민감한 사안을 충분한 한미 조율 없이 북한과 덜컥 합의했으니 미국 측이 반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정부의 태도다. 우리 정부는 한미 갈등에도 불구하고 9·19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할 방침이다. 통일부는 1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남북 정상 간 합의 사항을 속도감 있게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대북제재 해제가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제재와 맞물려 있어 우리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잖아도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에 미온적인 상황에서 우리 정부마저 제재 대열에서 이탈한다면 한미 공조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FFVD)’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압박 전략’에 차질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무엇이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정부는 남북관계 진전에 욕심을 내다 모처럼 맞은 북한 핵문제 해결의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아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