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대치동의 유명 독서토론학원 상담실장은 전화 너머로 ‘중학생 전담 독서반’를 강력하게 권했다. 어렵고 생소한 글은 자주 정독해봐야 는다며 수학과 관련된 문제를 직접 풀어볼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지금부터 꾸준히 학원에 보내야 실력이 는다. 중고등학생반은 금방 예약이 끝난다”고 채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역대 최고난도로 출제된 ‘수능 국어 31번’의 나비효과가 사교육 시장을 흔들고 있다. 초중등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속독·묵독·정독학원에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이른바 ‘분석적 독서법’ 학원을 찾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이번 수능의 경우 국어문제 지문이 길고 생소한 주제가 많아 시간 조절에 실패한 학생들이 많아서다. 읽기 속도가 느린 학생들은 ‘빠르고 정확하게 글을 독해하는 법’을 찾겠다며 사교육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강남 학부모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맘카페에서도 중학생 학부모를 중심으로 ‘독서법 붐’이 다시 일고 있다. 과거 일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만 유행했던 독서법 학원 연락망이 새 글로 올라오는가 하면 “예비 고등학생들에게 읽힐 만한 도서를 추천해달라”는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수능이 끝난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 독서 관련 서적 판매량이 857부로 직전 5일간에 비해 41.7% 증가했다.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와 최승필의 ‘공부머리 독서법’, 송승훈 작가의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독서 관련 서적 판매 1·2·3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교육 열풍이 독해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장담할 수 없는데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불필요한 부담을 지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순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뀐 뒤부터 국어는 계속 중요한 추세였기 때문에 단기간에 국어에 관심이 몰렸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수능 난이도를 지렛대 삼아 사교육을 부추길 때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입시정보를 수집하는 차원으로 보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애초에 국어 31번 지문이 수능 문제로 내기에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수능이 점점 어렵게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국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며 “난이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면 사교육 확장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는데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내는 것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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