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존재하는 식물종의 수는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만 10만종, 곤충은 100만종을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조류는 8,000종에 불과하며 호랑이, 사자 등 크고 사나운 동물들은 이에 크게 못 미친다. 어쩌면 앞선 두 문장을 본 대다수는 ‘당연하다’고 맞받아칠 것이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이 먹이 사슬의 상위에 있는 포식자일수록 개체 수가 적다는 사실이 자명하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왜 크고 사나운 동물은 개체 수가 더 적을까’.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생태학의 첫 장이 열린다.
책의 제목은 자못 흥미롭지만 이 책은 크고 사나운 동물은 희귀해진 이유만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 질문을 통해 그는 생태학이 무엇인지, 생태학의 주요 이론과 법칙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질문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상상력은 탐구와 학습으로 이어진다. 저명한 생태학자인 폴 콜린보는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40년 전 세상에 나온 이 책이 지금까지도 최고의 생태학 교과서라는 찬사를 받는 이유다.
이제 교과서를 펼쳐 들었으니 다시 앞선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답에 이르려면 생태계의 운영 법칙과 생태적 지위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우선 모든 생명체는 태양에 힘입어 살아간다. 다시 말해 생태계는 태양에너지를 원료로 삼는 소비자들로 이루어진 복합적 공동체다. 열역학법칙에 따르면 지구상의 생명체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태양에너지는 한정돼 있다. 할당된 에너지를 각 개체가 공유하며 생명을 유지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마치 한 기업에 과장이 사원보다 적고, 부장이 과장보다 적으며, 임원이 이들보다 적은 것과 마찬가지로 각 동식물은 각자의 직분에 맞는 적당한 개체 수를 유지하고 특정한 환경에서 자기 역할을 하며 살아가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생태적 지위 속에 동물과 식물은 각각 처한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생활양식에 아름답게 적응한 존재로 진화 혹은 퇴화하고 자연 생태계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저자가 생태계의 근간은 경쟁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동물의 크기가 각기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먹이사슬을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동물의 크기는 10배가량 커진다. 우선 포식자의 입장에서 설명하면, 생명체들은 제 먹잇감보다 훨씬 더 크게끔 진화해야 했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늑대, 사자, 기생충, 코끼리, 수염고래 따위는 먹잇감보다 작다. 예외를 만들어낸 것은 포식자를 피하기에 좋은 크기로 진화한 먹이사슬 아래 단계 동물들의 생존전략 덕분이다. 물론 이에 대응해 하이에나나 늑대 같은 포식자들은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포획법을 익히기도 했다.
이제 큰 동물이 희귀한 이유를 설명할 차례다. 이때 중요한 개념은 동물들의 살의 양, 이른바 동물이 몸에 축적한 열량의 총합인 ‘생체량’이다. 모든 동물은 자기 몸의 에너지를 열량 삼아 활동하고 생명을 유지한다. 동물의 살은 일종의 연료인 셈이다. 크고 사나운 동물일수록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하고 더 많이 섭취하고 연소해야 한다. 문제는 먹이 피라미드 상위의 동물들은 아래 단계 동물로부터 빼앗은 먹이로 연명해야 하는데 개체 보존을 위해서라도 개체 수를 무한정 늘릴 수 없다는 것이다.
책 표지에서 던졌던 질문의 답을 찾을 때쯤 저자는 또 다른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자연선택이 새로운 생존방식을 모색하는 역할을 떠안았을 때는 지상에 살아가는 생명체들 간에 미약하게나마 늘 평화로운 공존이 이루어졌지만 급기야 한 동물종은 제 마음대로 계속 새로운 생태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면서. “평화로운 공존을 팽개치고 적극적인 경쟁을 선택한” 이 동물종은 바로 인간이다.
40년 전의 저자는 놀랍게도 “지금은 우리 인간이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며 살고 있는 유일한 동물인 것 같다”며 “얼마나 인간들이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었는지는 이제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최상위 포식자 인간은 평화와 공존이라는 생태학적 규칙을 최초로 깨트린 동물종이다. ‘왜 인간은 예외적이었을까’에서 출발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인간을 다윈적 세계로 돌아가게 할 것인가’라는 답을 찾는 과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40년 전의 책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과제다. 1만8,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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