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서 유명 화가 에곤 실레 특별전이 열렸다. 여기에는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재단에서 빌려온 ‘발리의 초상’도 있었다. 그런데 전시회가 끝난 뒤 한 유대인 유족들이 초상화에 대해 나치에게 빼앗긴 그림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지루한 법정 공방이 이뤄진 끝에 초상화가 나치의 약탈품이었다는 사실이 인정됐고 2010년 재단은 결국 유족 측에 그림의 대가 1,900만달러를 지급했다. 이후 오스트리아에서는 나치 약탈 예술품 반환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관련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예술품을 거래할 때 출처도 의무적으로 증명해야 했다. 일부이기는 하나 약탈 문화재 반환의 길이 열린 것이다.
‘발리의 초상’이 문화재 반환의 큰 전환점이 됐지만 전세를 완전히 바꾼 것은 아니다. 1965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면서 식민지 시대에 가져갔던 왕관과 옥새를 돌려줬다. 형식은 ‘반환’이 아닌 ‘선물’. 각국의 반환 요구가 쇄도하면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에서 약탈한 문화재로 가득 채운 대영박물관이 텅텅 빌 것을 알았을 터다. 프랑스가 나치에게 빼앗긴 28점의 미술품을 독일로부터 돌려받는 데 19년이 걸린 것도 문화재 반환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화재 환수는 한국의 당면과제이기도 하다. 올 4월 현재 해외에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는 일본 7만4,000여점을 포함해 총 17만2,316점에 달한다. 환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해방 직후에는 일본인들이 가져간 우리 문화재를 몰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대일 감정 악화와 공산주의 확산을 경계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강력한 반대에 좌절해야 했고 1965년 문화재 반환을 정부가 아닌 민간의 자발적 기증으로 한정한 한일문화재협정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온 문화재가 5,000여점이 채 안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아프리카 식민지 약탈 문화재에 대한 반환 논의가 빨라지는 모양이다. ‘식민지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전부 영구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의 정부 보고서가 결정적이었다. 내년 초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파리에서 국제회의를 열어 문화재 반환 원칙을 논의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어디까지나 아프리카 식민지에 한정됐다. 프랑스의 결정이 구한말 약탈해간 우리 문화재까지 이어지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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