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남현동에 3층짜리 다가구 주택을 갖고 있는 A씨는 최근 세금 걱정이 크게 늘었다. 내년 단독(다가구) 표준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이 많게는 2~3배나 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사는 남현동도 최소 45% 이상이다. A씨는 “은퇴를 해 별다른 수입이 없다”며 “아직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보유세가 200만~300만원만 올라도 부담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다가구 주택 공시가격 폭탄이 결국은 월세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공시가격 인상폭이 워낙 큰 데다 적지 않은 다가구 주택 소유주가 은퇴자이기 때문이다. 조세 형평성이라는 도그마에 빠진 정책이 거꾸로 서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꼴이다.
27일 국세청이 공개한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지난해 기준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대상자 가운데 60세 이상이 13만299명으로 전체의 39.9%에 달한다.
이는 공시가격 급등으로 보유세가 늘어나는 이들의 상당수가 은퇴자라는 뜻이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가구당 평균 자산은 4억1,573만원으로 이 중 70.2%가 부동산이다. 금융자산은 25.3%에 불과하다. 보유한 집이 자산의 전부로 예금 같은 금융자산이 적어 세금이 급증하면 은퇴자의 경우 전월세 가격을 올리거나 주택을 팔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남수 신한은행 신한PWM도곡센터 PB팀장은 “고가 다가구 주택을 갖고 있어도 은퇴자는 월세를 받아 생활비로 쓰는 사람이 많다”며 “보유세 부담으로 기존 전세를 반전세로 바꾸거나 월세라면 보증금과 임대료를 큰 폭으로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공시가격 인상폭은 세금 부담을 홀로 지기에는 너무 가파르다. 서울경제신문 분석 결과 강남 봉은사로의 연면적 427㎡의 다가구 주택은 공시가격이 올해 14억원에서 내년 40억원으로 올라간다. 재산세와 종부세를 더한 보유세는 올해 480만원에서 내년 731만원으로 오른다. 오는 2022년에는 보유세만 6,092만원이다. 용산과 서초 등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공시가가 2~3배 오른 곳이 속출하다 보니 내년 이후 보유세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서민들에게 직격탄이다. 다가구 세입자의 경우 자산이 없는 청년이나 저소득층일 가능성이 높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의 3.3㎡당 단독·다가구 주택 평균가격은 올 상반기 2,115만원인데 아파트는 2,585만원이다. 서울 지역 연립·다세대의 평균 월세 가격(한국감정원 자료)은 지난해 11월 50만2,000원에서 올 11월 53만9,000원으로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보유세의 급격한 인상은 거주비용의 증가를 불러올 수 있다. 김연화 IBK기업은행 부동산팀장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있기 때문에 바로 반영할 수는 없지만 만기가 됐을 때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며 “조세전가 현상이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경제의 이념화가 되레 서민을 어렵게 하는 역설을 낳는다고 입을 모은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소득감소의 원인이 됐듯 형평성을 앞세운 징벌적 과세는 거꾸로 서민부담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얘기다. 이는 가처분소득을 줄여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에 역행하게 된다는 해석도 있다.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주거비용이 뛰면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라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커질 것”이라며 “시장에 맞서서 이길 수 있는 정부는 없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영필·정순구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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