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의 대부도로 진입하기 위해 시화방조제 위로 닦인 직선도로 11㎞를 달렸다. 탁 트인 도로 왼쪽에는 인공호수가, 오른쪽에는 서해가 펼쳐졌다. 시화방조제는 시흥 정왕동에서 안산 대부도까지 이어주는 방조제로 지난 1986년 공사를 시작해 1994년 완공됐다. 시화방조제는 ‘시흥에서 화성까지 연결된 방조제’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 방조제의 3분의2 지점에 우뚝 선 ‘달 전망대’가 섬으로 들어가는 여행객을 굽어보고 있었다.
달 전망대 바로 옆에는 조력발전소가 있는데 전망대의 이름은 ‘달의 인력으로 발생하는 조수간만의 차로 전기를 생산한다’는 뜻으로 명명한 것이다. 달 전망대의 높이는 75m로 25층 아파트의 키에 해당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에 오르면 곧게 뻗은 방조제의 모습이 장관이다. 전망대 아래 조력발전소에는 발전기 10개가 있어 시화호 안으로 바닷물이 유입될 때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전기의 양은 소양강댐 발전량의 1.56배, 인구 50만명이 사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석유 86만배럴의 수입대체 효과가 있다.
대부도가 둥지를 튼 바다는 경기만(灣)의 북쪽. 만의 면적은 새만금의 20배나 된다. 예전에 이 일대는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의 황금어장이었다. 김선철 문화관광해설사는 “옛날에는 갯벌에 들어가면 꽃게가 자꾸 물어 피해 다녀야 할 정도였다”며 “바지락이나 백합을 캐러 들어가면 한나절 만에 20㎏짜리 자루 40개를 채워 경운기에 실어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화방조제의 갑문이 설치되면서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해양생물이 폐사하며 수산업은 위축됐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육지로 연결된 도로는 볼거리 풍부한 섬으로 관광객들을 불러들였다. 대부도는 수도권 시민들에게 ‘지척에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 볼 수 있는 섬’으로, 또 포도의 주산지이자 바지락칼국수의 고향으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이미지는 대부도가 가진 콘텐츠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대부도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고구려·백제·신라의 쟁패를 가늠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수많은 이야기와 역사의 더께가 쌓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김 해설사는 “대부도를 손에 넣으면 남으로는 충청도를 넘볼 수 있고 북으로는 한강유역과 멀리는 황해도까지 섭렵할 수 있었다”며 “신라의 삼국통일을 앞두고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덕적도로 13만 군사를 이끌고 들어온 것도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선조에는 화랑진에 조선좌도 수군 300명이 주둔하기도 했으며 안산에는 별망성이 있어 왜구의 침입을 감시하기도 했다. 대부도에는 봉수대가 다섯 곳이나 있었고 ‘망생’이라는 마을 이름은 ‘배를 바라본다’는 뜻의 망선(望船)이 변해서 된 것으로 이곳의 지정학적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안산시는 대부도에 해솔길 7개 코스를 만들어놓았다. 섬 구경 후 귀가할 것을 감안하면 일단 남단으로 내려가 7코스 시작점부터 둘러보고 섬의 입구인 북쪽으로 올라오는 것이 합리적이다. 시작점에는 안산어촌민속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대부도의 역사와 생태를 일별할 수 있어 관광 시작 전 예습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근처에는 탄도항 선착장과 누에섬 등대 전망대도 있어 사진 촬영 포인트로도 손색이 없다. 섬을 북상하다 보면 5코스 중간지점에 왼쪽으로 동주염전을 만날 수 있다. 동주염전은 대부도에 남은 마지막 염전으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염도가 75%로 낮고 맛이 뛰어나 청와대에 납품되기도 했다.
볼거리 많은 대부도 여행이지만 구봉 낙조 전망대에는 일몰에 맞춰 도착하는 것이 좋다. 대부해솔길 1코스 서북쪽에 있는 구봉 낙조 전망대에는 안산시가 공모한 구조물이 바다를 향해 서 있고 이를 파인더에 담아 일몰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도 한 무리가 모여 있었다. 일몰 사진을 찍는 와중에 김 해설사는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왔던 길로 되돌아나가지 않으면 산길을 타야 한다”고 재촉했다. 차를 세워둔 종현어촌체험마을로 돌아오는 길은 그의 말처럼 불어난 바닷물로 곳곳이 잠겨 들고 있었다.
/글·사진(안산)=우현석객원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