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덜컹거리는 기차를 제대로 제어할 기관사(driver)가 절실한 상황이다.”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합의안을 부결한 1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영국의 혼돈을 잠재울 리더의 필요성을 이같이 강조했다. 합의안 투표 결과 드러난 압도적 표차로 가뜩이나 취약했던 테리사 메이 총리의 리더십이 또 한번 큰 타격을 받으면서 혼란을 진정시킬 새 리더가 더욱 필요해진 영국의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이날 브렉시트 합의안 부결 직후 제1야당인 노동당이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함에 따라 메이 총리는 한달여 사이 두 번째로 신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불신임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한데다 메이 총리는 “사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지만 이미 지도자로서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받은 그가 내각 내 반발로 축출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메이 총리의 ‘리더십 위기론’이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당시 메이 총리는 집권 여당인 보수당 의원들이 제기한 불신임투표에서 200표의 신임을 얻어 자리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공식적으로 오는 12월까지 보수당 내 불신임 도전은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 승리로 그가 당내 입지를 굳힌 것은 아니다. 당시 메이 총리는 반대표를 줄이기 위해 투표 직전 의회 연설에서 2022년으로 예정된 차기 총선 전에 사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총선 카드’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당내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메이 총리의 정국운영 동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사실상 브렉시트의 마지막 단계였던 승인투표에서 합의안이 부결된 데는 야당의 반대뿐 아니라 그가 속한 보수당에서 118표의 반대표가 쏟아져 나온 것이 결정타가 됐다. 이들 보수당 내 반대파도 불신임투표에서는 정권 유지를 위해 메이 총리를 지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역대 최악의 참패라는 굴욕을 맛본 메이 총리의 리더십은 이미 벼랑 끝에 내몰린 상태다.
꼬일 대로 꼬인 메이의 정치행보로 영국 내에서는 벌써부터 ‘포스트 메이’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인디펜던트 등 영국 주요 현지 언론은 메이 총리의 뒤를 이을 차기 보수당 유력 후보들의 면면을 짚어내고 있다.
메이 총리가 사퇴 또는 실각할 경우 차기 총리가 될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보리스 존슨 전 외교장관이 꼽힌다. 그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부터 찬성 진영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브렉시트 강경파다. 존슨 전 장관이 총리가 된다면 그는 브렉시트 합의안을 부정하고 EU와 캐나다 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포괄적경제무역협정(CETA)과 비슷한 협정을 맺음과 동시에 주요 국가와의 협정을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또 다른 유력 후보로 부상하는 인물은 사지드 자비드 현 내무장관이다. 그는 브렉시트 강경파로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탈퇴)’를 가장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인디펜던트는 “겨우 1파운드를 주머니에 넣고 영국으로 온 파키스탄 출신 버스 운전기사의 아들이 내각 실세가 됐다는 드라마틱한 배경(스토리)이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러미 헌트 현 외무장관도 주목되는 인물이다. 그는 EU 잔류파에서 브렉시트 강경파로 입장을 바꾼 인물로 무엇보다 당내 파벌의 이견을 통합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메이 총리 역시 취임 전 내무장관 시절 대표적인 ‘브렉시트 반대파’에서 브렉시트 정국을 단숨에 정리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브렉시트 찬성 쪽으로 급선회한 바 있다. 이 밖에 메이 총리와 EU 간 합의안에 반발해 사퇴한 도미닉 라브 전 브렉시트 담당 장관도 차기 지도자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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