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와대의 위치가 풍수상 좋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문 대통령과의 사이가 워낙 가깝다 보니 그런 말까지 할 수 있는 것인데 참모들은 유 위원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종종 말렸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자꾸 청와대 풍수가 안 좋다는 말을 하면 일이 안 풀릴 때마다 해결책을 찾기보다 풍수를 먼저 떠올릴 것 아닌가’라며 유 위원에게 자제해 달라고 당부를 했다”고 전했다.
유 위원의 이런 인식은 최근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이 어렵다고 공식 발표한 자리에서도 드러났고 이는 때아닌 청와대 풍수 논쟁으로 비화했다. 정부 관계자가 과학적 근거도 없는 풍수를 언급하는 게 부적절했다는 비판에서부터 박정희·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 역대 대통령의 말로가 순탄치 않아 정말 터가 좋지 않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정말 ‘흉지(凶地)’인 것일까. 그렇다면 세종시는 ‘길지(吉地)’이며 미국의 백악관, 중국의 중난하이의 풍수는 어떨까.
우선 유 위원의 말마따나 풍수가들 사이에서는 청와대가 터가 안 좋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시작은 1990년대 초반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였다. 그는 저서 등에서 “경복궁의 북쪽 문인 신무문과 청와대 정문 사이에 난 도로를 경계로 경복궁 쪽은 사람들의 거주처가 되지만 청와대가 있는 북쪽은 신령(神靈)의 강림지가 된다”며 신적 권위가 부여된 곳에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법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풍수 전문가들은 청와대 뒤편의 북악산이 바위가 많아 살기(殺氣)가 강한데 이를 청와대가 온몸으로 맞고 있고 조선시대 소외된 후궁들의 거처가 있어 ‘한(恨)’이 서려 있다고 말한다. 일제가 1939년에 청와대 터에 조선 총독이 머무는 관저를 지었는데 그로부터 6년 뒤 패망한 것도 흉지의 근거로 제시된다. 전향수 한국풍수지리연구원장은 “일제강점기에 임시로 지어진 조선 총독 관저 자리에 풍수적인 고려를 하지 않고 청와대를 지었다”며 “종로구 정독도서관 위치가 길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역대 대통령의 비극은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청와대를 신축하며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祉)’라고 쓰인 표석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풍수지리상 최고의 명당이라는 말로 조선 중기인 300~400년 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풍수지리를 중시한 고려왕조 때 왕이 임시로 머무는 이궁(離宮)을 현재의 청와대 터에 세웠으므로 길지라는 주장도 나온다. 풍수에 각별한 관심이 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언론사 간담회에서 ‘청와대는 흉지’라는 언급이 나오자 “청와대 터는 왕 터다. 정말 좋은 데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화기(火氣)가 있다 해서 청계천을 파 물을 들이고 해태를 설치했다고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왕의 거처’를 둘러싼 풍수 논쟁은 조선시대 때부터 600년간 이어져 왔다. 세종 15년인 1433년 지관 최양선은 세종에게 “경복궁은 명당이 될 수 없고 승무원(종로구 가회동·재동·계동 일대)이 으뜸 명당이므로 궁궐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리학을 떠받들던 신하 대다수가 최양선을 몰아붙이면서 이전은 없던 일이 됐다. 워낙 사람의 관심이 집중된 곳이어서 흉흉한 일이 생길 때마다 풍수 논쟁은 점화했다.
세종시는 어떨까. 뒤로는 원수산, 앞으로는 금강이 있는 배산임수 지형이라 풍수에서 말하는 명당의 기준은 만족시킨다. 전 원장은 “정부청사가 들어선 곳은 북악산과 달리 풍수적으로 정돈이 잘된 원수산 밑이어서 명당”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주산(원수산)과 좌청룡(전월산)은 있지만 우백호가 약하고 안산이 없는 것은 흠으로 여겨지는 부분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 미국을 보면 백악관 앞뜰인 일립스의 타원형 굴곡과 잔디밭에서 흘러나오는 좋은 기가 국가 전체를 부드럽게 감싼다는 해석부터 백악관 뒤편 정중앙에 나 있는 16번가 도로가 관저의 심장에 살기를 뿜어 국가 분열을 일으키고 실제 각종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해설까지 각양각색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풍수학자의 조언을 받아 사무실을 개조하기도 했다. 중국 최고권력층이 거주하는 중난하이를 두고는 베이징 도심에서 서쪽으로 25㎞ 떨어진 샹산(香山)에서 오는 지기가 강하게 맺혀 있는데 세계 경영의 꿈을 키우는 것이라는 해석과 분열의 기상이 있다는 말 등이 다양하게 나온다.
풍수에 대한 설들의 진위 여부를 떠나 효율적인 국가행정을 위해서는 변화가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표적인 것이 세종시. 청와대·정부서울청사·국회와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 자체만으로 정부 내 소통 및 협업을 가로막고 있다. 청와대 보고와 전 부처 회의, 국회 답변 등을 이유로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과장급 이상 중 주중에 세종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절반밖에 안 된다”며 “업무에 집중할 수도 없고 후배 사무관들 능력 향상에도 심각한 차질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종에 거주하는 공무원들은 과천 때보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10분의1로 줄었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백악관과 행정부·의회가 워싱턴DC에 집결돼 있고 영국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 있는 총리 관저 옆에 재무장관 집무실이 연결돼 있어 수시로 이동이 가능해 효과적인 업무가 가능하다.
청와대의 위치도 문제다. 백악관은 대로변에 있어 시민이 창살 사이로 백악관 내를 오가는 대통령을 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청와대는 경복궁 뒤편에 깊숙이 위치해 있다. 대통령이 연출된 것이 아닌, 날 것의 민심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청와대에 ‘구중궁궐’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며 청와대만 들어가면 멀쩡하던 사람도 ‘불통’으로 변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근거다. 이에 김대중·노무현·이회창 등 역대 대통령 후보들은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공약했지만 경호 등의 현실적인 이유로 모두 흐지부지됐고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 결과를 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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