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만큼 지역민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이 또 있을까. 지역 특산물부터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과 각종 정보까지 시장에는 한 동네의 희로애락이 스며 있는 까닭에 눈 밝고 경험 많은 여행자라면 어느 지역에 가든 반드시 전통시장을 들르는 경우가 많다. 설 연휴를 앞둔 이번 주말에는 대형마트의 위세에도 저마다의 풍경과 이야기를 간직한 시장에서 장도 보고 서울 도심 여행의 즐거움도 만끽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영등포구의 대림중앙시장은 영화 ‘범죄도시’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젊은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영화에서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공간으로 묘사됐지만 실제 시장의 분위기는 더없이 밝고 활기차다. 인근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림동 일대에 모여 살게 되면서 도심 속 차이나타운이 형성됐다. 이 때문에 대림역에서 중앙시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한글보다 한자로 적힌 간판이 더 많이 보이고 시장 좌판에는 중국식 만두와 소시지, 옌볜 순대 등이 가득해 마치 중국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동작구의 남성사계시장은 아파트 단지와 지하철역 사이에 위치해 평일에도 찾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지난 2016년부터 봄·여름·가을·겨울의 테마로 시장을 새롭게 꾸미면서 주민과 여행객의 발걸음을 유혹하고 있다. 시장의 시작점인 ‘봄’ 구역은 공산품을, ‘여름’ 구역은 과일·채소·고기를, ‘가을’ 구역은 간편한 먹거리를 판매하며 ‘겨울’ 구역은 찬바람 부는 날에도 즉석에서 끓인 뜨끈한 육수를 맛볼 수 있는 먹자골목이다.
서대문구의 영천시장은 안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냇가 위에 조성된 장터다. 전통시장의 모습을 간직하면서도 복고 감성이 물씬한 헌책방과 꽈배기·떡볶이 등의 간식거리로 입소문을 타면서 젊은 세대에서도 인기가 높은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저녁에 가면 이미 다 팔리고 없는 꽈배기는 이 시장의 명물이며 수산시장에서나 볼 법한 킹크랩과 로브스터를 판매하는 점포도 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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