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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야단법석] '영장기각'이 무죄? 승리가 구속되지 않은 이유

대법원 예규에 따라 무죄추정 원칙

불구속 수사·재판이어져, 영장기각=무죄X

증거인멸·도주우려 없으면 구속 필요성X

미국 등 선진국 대부분 사건 불구속 원칙

구속 위기를 면한 승리./연합뉴스




지난 14일 그룹가수 빅뱅의 전 멤버 승리(29·본명 이승현)가 구속의 위기를 면했다. 배우 박한별의 남편인 유인석 유리홀딩스 대표도 승리와 함께 구속의 갈림길에 놓였다가 살아남았다.

네티즌들은 분노했다. 승리와 유 대표는 버닝썬 클럽 폭행사건으로 시작돼 성매매 알선 혐의로까지 커진 문제의 단체카톡방 속 핵심인물이었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담당 영장부장판사인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판사를 해임하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여론의 싸늘함은 3월부터 그동안 신 부장판사가 버닝썬 사건 등에 연루된 인물들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탓이다.

‘성매매알선 및 횡령’ 혐의 승리(빅뱅 전 멤버)·유인석(유리홀딩스 대표) 구속영장 기각
‘마약류관리법위반’ 혐의 이문호(버닝썬 클럽 대표이사) 구속영장 기각
‘마약류관리법위반’ 혐의 중국인 여성 애나(버닝썬 클럽 MD) 구속영장 기각
‘상해’ 혐의 장모씨 (버닝썬 클럽 영업이사) 구속영장 기각


구속 위기를 면한 유인석(모자이크처리) 유리홀딩스 대표./연합뉴스


◇‘영장기각’ = 무죄 X

승리와 유 전 유리홀딩스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유는 무엇일까. 영장심사 결과를 본 일부 네티즌들은 법원이 승리와 유 전 대표를 무죄로 판단한 것처럼 이해했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현재 우리나라는 법은 피의자를 구속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영장실질심사제도가 도입될 때 만든 ‘대법원 예규’에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따라 ‘무죄 추정’과 ‘불구속 수사’, ‘불구속 재판’이 대원칙으로 명시돼있다.

피의자 구속이 예외의 경우인 만큼, 영장전담 판사는 영장을 기각할 때보다 영장을 발부할 때 이유를 길게 달아야 한다.

승리와 유 전 대표의 영장 기각 사유가 길지 않은 이유다. 먼저 주요 혐의인 ‘법인자금 횡령’ 부분이 형사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인지를 두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 기각 사유로 지적됐다. 이어 혐의 내용 및 소명 정도, 피의자의 관여 범위, 피의자신문을 포함한 수사 경과, 그 동안 수집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 증거인멸 등과 같은 구속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나온다.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았지만 승리 등 버닝썬 클럽 사건 연루자들이 무죄인 것은 아니다. 수사와 재판 과정을 통해 사건의 실체가 밝혀진 후 유·무죄 판단이 내려진다.

구속 위기 면한 버닝썬 클럽 MD ‘애나’./연합뉴스




◇영장청구서·범죄사실소명·증거인멸 및 도주우려에 따른 판단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와 법에서 인정하는 죄 또는 검찰이 영장청구서에 기재한 범죄사실이 어떠한 것인지에 따라서 여론의 뜻과는 구속영장심사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버닝썬 클럽 MD로 알려진 중국인 여성 애나의 기각 사유를 보면, ‘마약류 투약 범죄혐의는 인정되지만 마약류 유통 혐의는 영장청구서 범죄사실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영장청구서에 기재돼있지 않은 사실을 법원에서 판단할 수는 없다. 더욱이 법원은 애나의 마약류 유통 혐의에 대해 범죄사실 소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아울러 피의자의 주거환경을 고려했을 때 도주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구속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한 대법원 예규에 따라 무죄로 추정되는 피의자를 도주 우려가 없는데도 신병을 확보한다면 인권 보장의 가치에도 어긋난다.

역시 구속영장이 기각됐던 이문호 버닝썬 클럽 대표이사에 대해서 법원은 ‘현재까지 증거자료 수집 및 혐의 소명 정도, 관련자들의 신병확보·접촉 차단 여부 등에 비추어 구속 필요성 인정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도주 우려와 마찬가지로 피의자가 사건의 증거를 인멸 할 가능성이 없다면 굳이 구속해 수사하거나 재판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뇌물수수·성범죄 의혹을 받아 구속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연합뉴스


◇선진국일수록 판사 재량 적고 불구속 원칙에 따른 기계적 판단 많아

승리·이문호·애나·윤중천 등 최근 논란이 된 사건의 당사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해 해임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던 신 부장판사는 지난 16일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곧 비판 여론은 잠잠해졌다.

김 전 차관의 영장청구서에는 성폭행 혐의는 빠졌다.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위반(뇌물) 혐의만 기재됐다.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1억6,000만원 상당의 성접대와 금품을 받은 혐의다. 김 전 차관은 앞서 인천공항을 통해 몰래 출국하려다가 걸렸다. 정확한 이유는 김 전 차관만이 알겠지만, ‘별장 성접대 사건’ 관련 자신의 범죄혐의가 다시 불거진 직후의 행동인 만큼 도주의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신 부장판사는 구속영장 발부 사유에 ‘주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과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신 부장판사가 영장을 발부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관련 피의자들인 직원들도 증거인멸의 염려가 구속 사유로 인정됐다.



결국 구속영장 심사는 피의자의 태도와 증거인멸·도주 우려 여부, 혐의의 소명 등 여러 가지 이유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미국 등 선진국은 불구속 원칙에 따라 판사의 재량이 적고 기계적인 보석·불구속이 대부분이다. 구속영장 발부와 기각을 두고 국민들의 불신과 부정적 여론이 거세지면서 법조계에서는 기계적 보석·불구속 기준을 확실히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주연·오지현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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