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전 11시10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중회의실.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기자간담회를 마치며 마무리 발언을 하던 문무일 검찰총장 눈에 갑자기 이슬이 맺혔다. 문 총장은 뭔가 말을 이으려다 목이 멨는지 몇 초간 침묵했다. 문 총장은 눈물을 애써 참으며 “마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회의실를 빠져나갔다.
청와대·여당과 첨예한 갈등을 겪는 가운데서도 시종일관 당차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간담회를 진행하던 문 총장이었기에 기자단도 술렁거렸다. 문 총장은 간담회를 100여 분간이나 지속했음에도 “준비한 건 많은데 생각보다 질문이 부족하다”고 말할 정도로 만반의 채비를 갖춘 상태였다. 정치권력의 검찰 흔들기에 관한 질문엔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서 양복을 흔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문 총장은 “뭐가 흔들립니까? 옷이 흔들립니다. 어디서 흔드는 겁니까?”라며 정치권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사전에 준비한 듯한 행동이었다.
그런 문 총장이 마지막에 ‘광주’를 언급하며 말끝을 흐리자 기자들도 설왕설래했다. 이날 문 총장의 언론 대응으로 유추할 때 추가로 하려던 말은 돌발 발언이 아닌 미리 준비한 얘기일 가능성이 높았다. 갑작스럽게 말을 지어내려다 포기한 게 아니라 준비된 말을 하려다 감정이 북받친 모양새였다. 간담회 장소를 벗어나는 순간까지 문 총장의 손안에는 A4 용지가 한 뭉치나 들려 있었다.
◇5·18 이후 “민주주의에 삶 바치겠다” 다짐=검찰에 따르면 문 총장이 최후에 언급하려던 주제는 다름 아닌 5·18 민주화운동이었다. 언뜻 권력 기관인 검찰의 수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주제였다. 게다가 문 총장은 5·18을 비롯해 민주화운동 역사 전체의 적통을 자처하는 청와대·여당과 임기 내내 각을 세운 인물이다.
사연은 이랬다.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5·18은 문 총장에게도 인생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다. 문 총장은 196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80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문 총장은 5·18 당시 스무 살 재수생이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 총장의 광주일고 동기생이 총에 맞아 숨지고 손위 동서가 계엄군 곤봉에 맞아 머리에 중상을 입었다. 2017년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국군기무사령부의 사찰 문건에 따르면 1996년 기무사는 5·18 당시 계엄군 발포로 사망한 사람을 문 총장의 고교 동기생이 아닌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으로 파악했다.
문 총장은 신군부가 고향 땅을 짓밟는 과정을 지켜보며 무소불위의 공권력이 국민 기본권을 얼마나 억압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5·18 이후 청년 문무일은 남은 삶을 반드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바치겠노라고 다짐했다. 문 총장은 최근까지도 지인들에게 “5·18 이후 살아남은 사람은 (희생자들에 대한) 채무자”라는 생각을 종종 밝혔다는 전언이다.
5·18에 대한 부채 의식은 이듬해 고려대 법대 입학 때부터 문 총장을 열렬한 운동권 학생으로 만들었다. 문 총장은 법조계에서는 매우 드문 운동권 출신 검사다. 검찰 전체로도 운동권 출신은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 등 손에 꼽는다. 1980년대만 해도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운동권 학생과 이들을 처벌하는 검사는 물과 불의 관계처럼 여겨졌다.
문 총장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스스로 검사가 돼 형사사법 절차에 민주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런 신념 때문에 문 총장은 1986년 사법고시 합격 뒤 검사가 된 이후에도 자신의 학생운동 이력을 감추지 않았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문 총장은 1995년 5·18 특별수사본부에 수사 검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5·18 특별수사본부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법조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문 총장을 정권 첫 검찰총장으로 임명할 때도 이 같은 배경을 높이 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상 처음 과거사 사과하고 민주주의 반복 강조=문 총장이 이전 검찰총장들과 가장 뚜렷이 구별되는 지점은 과거사를 대하는 그의 자세다. 문 총장은 2017년 8월 취임 직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부터 검찰 사상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한 공식 발언을 내놓아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당시 문 총장은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리고 유족들을 만나 사과와 위로의 뜻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문 총장은 2018년 3월 직접 부산에 내려가 고(故) 박종철 열사 부친 박정기씨를 방문, 검찰의 옛 잘못을 사과했다. 박 열사 유족뿐 아니라 검찰총장이 과거사 사건 당사자를 직접 만나 공식 사과한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같은 해 11월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의 사연을 듣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박정희·전두환 정부 시절 자행된 대표적 인권 유린 사례다. 문 총장의 이 같은 행보에는 5·18에 대한 개인적 경험도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게 법조계의 대체적 평가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 논란을 두고도 문 총장은 유독 ‘민주주의’를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해외 출장 중이던 지난 1일 기자단에 보낸 메시지에서도, 4일 귀국 후 취재진에게 밝힌 입장에서도, 16일 기자간담회 발언에서도 문 총장은 일관되게 “수사권 조정안은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기소독점권·특별수사권 남용 등 검찰이 그동안 과도하게 많은 권한을 누린 부분은 인정하지만, 이를 축소·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비슷한 권한을 경찰 등 다른 권력기관에 부여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게 요지였다. 수사 착수 기관과 종결 기관을 반드시 분리해야만 형사사법절차 상 민주주의 원칙이 지켜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적통 민주 세력’임을 자부하는 여권을 향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는 자신감도 그의 5·18 경험과 학생운동 경력에서 비롯된 것이란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정치적 공세에도 끝내 소신 행보=현 정부에서 임명한 첫 검찰총장임에도 문 총장은 최근 청와대, 민주당 및 범여권 정당들, 법무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및 진보 성향 시민단체, 여권 핵심 지지자들에게 연일 비판의 화살을 맞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검찰개혁을 완수하라고 임명했더니 임기 내내 조직 옹위만 하고 있다는 게 요점이다. 쏟아지는 견제와 ‘검찰 패싱’ 논란에도 문 총장은 취임 직후부터 임기 말까지 본인의 소신을 전혀 굽히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마지막 순간 문 총장이 5·18과 검사 임관 당시의 목표 등을 언급하며 그의 소신이 민주주의 원칙에 오히려 더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현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무조건 검찰 기득권 사수 논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항변을 하고자 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마침 기자간담회 날짜도 5·18을 고작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문 총장은 “마지막 간담회가 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끝내 5·18과 자신의 민주적 신념을 입밖에 꺼내지 못했다.
문 총장의 임기는 오는 7월24일 만료된다. 법무부는 지난 10일 김진태 전 검찰총장 때보다 25일 앞당겨 차기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서울 역삼동의 한 변호사는 “문 총장이 학창 시절 열혈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사실은 법조계에 잘 알려진 얘기”라며 “검사 중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누구보다 투철한 문 총장도 이 같은 입장인데 앞으로 정부 개혁안에 마냥 찬성하는 후임 총장을 찾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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