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일 일본에서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은둔형 외톨이)’ 성향의 40대 아들을 흉기로 찔러 무참히 살해한 70대 아버지가 남긴 메모다. 전직 차관 출신의 이 비정한 아버지는 아들의 분노가 다른 아이들을 향해 분출돼서는 안 되겠다고 느끼고 수 시간 후에 직접 흉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뿐만 아니라 최근 일본에서 중장년 히키코모리 관련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히키코모리는 장기간 집에 박혀 사회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들을 뜻한다. 지난 2일 발생한 전직 차관의 장남 살해사건도 히키코모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 받았다. 아버지는 경찰에 “아들이 히키코모리처럼 방에만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정 내 폭력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와사키시 20명 살상사건을 알고 있다. 장남도 남에게 해를 가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가 언급한 가와사키시 살상사건은 지난달 28일 아침 등굣길에서 발생한 주택가 흉기 난동 사건이다. 사건의 범인인 50대 남성이 통학버스를 기다리던 초등생 등을 상대로 흉기를 무차별적으로 휘둘러 초등학생 1명을 포함해 2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 아직 정확한 살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후 언론을 통해 그가 히키코모리 성향을 가진 인물로 알려졌다.
부모가 이혼하고 어린 시절부터 삼촌 부부 밑에서 자란 그는 장기간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집에 틀어박혀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후 고령의 삼촌 부부가 과거 나가사키시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개호(介護·환자나 노약자 등을 곁에서 돌보는 것) 인력을 집에 들일지 고민하면서 히키코모리 성향이 있는 이와사키 씨가 반대할까 봐 걱정이라는 얘기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경찰은 그의 집에서 대량 살인 사건을 다룬 잡지 2권을 발견하기도 했다. 방에 틀어박혀 이런 잡지를 읽으면서 범행을 계획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히키코모리는 일본에서 경기 침체가 시작된 1990년대부터 사회 문제로 부각됐지만,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오지 않은 채 20년가량 세월이 흘렀고 20~30대이던 히키코모리 청년은 방에 틀어박힌 채 40~50대의 중장년이 됐다. 일본 내각부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40~64세 히키코모리 인구는 무려 61만3,000명으로 추산된다.
중장년 히키코모리 문제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던 부모세대가 노년기에 접어들어 더는 도움을 주기 어렵게 되는 이른바 ‘80-50’ 문제로 전개된다. 히키코모리 자녀가 50대가 되고 부모세대는 보살펴줄 사람을 찾지 못한 채 80대에 접어드는 데, 이 경우 부모와 자녀 모두 기본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히키코모리를 범죄자로 동일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자 히키코모리 가족을 가진 이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도도부현별로 위치한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와 지자체에는 이들의 전화상담이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타트 사무국 관계자는 “부모들이 나이가 들면서 자녀의 장래에 불안함을 느끼며 상담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히키코모리 관련 범죄를 이유로 모든 히키코모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고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히키코모리를 범죄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사실에 비춰볼 때 맞지 않는 일일 뿐 아니라 히키코모리를 줄이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히키코모리 경험자와 당사자의 발언을 전하는 언론 매체 ‘히키 포스’의 편집장은 지난달 30일 인터넷 사이트에 “세상이 히키코모리에 대해 무차별 살인범 예비군 같은 편견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히키코모리와 폭력적 범죄의 상관관계는 매우 낮으며 히키코모리를 둘러싼 오해가 구직을 포함해 향후 이들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히키코모리가 ‘악마화’될 수록 사회가 이들을 받아들이거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히키코모리의 자립을 도울 근본적인 해결책은 히키코모리를 집에서 꺼내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서 생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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