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국립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는 파리를 벗어나 독일과 인접한 메츠에 2010년부터 ‘퐁피두 메츠 센터’를 두고 있다. 탁 트인 공간에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전시기법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오는 9월 19일까지 원로작가 이우환(83)의 회고전이 한창이다. 파라다이스그룹의 후원으로 열린 이번 전시는 작가의 1960년대 후반의 초기작부터 지난 50여 년의 작품들을 두루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에는 미국 뉴욕 근교에 위치한 ‘현대미술의 성지’ 디아 비컨(DIA:Beacon)이 이우환의 전시를 열었다. 1920년대 공장을 개조해 지난 2003년 문 연 디아비컨은 작품을 몸으로 직접 경험해야 하는 대규모 설치작품을 집중적으로 소장한 곳으로 유명한데, 이번에 이우환의 초기작 ‘관계항’ 중 1969년, 1971년, 1974년작 등 총 3점이나 소장했다. 돌과 철판으로 이뤄진 작품을 통해 산업사회와 자연의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향후 2년간 장기 전시될 예정이다.
중국 상하이시(市)가 운영하는 PSA현대미술관은 푸른색의 거장 이브 클라인(1928~1962)과 이우환, 중국작가 딩이와의 3인전을 오는 7월28일까지 연다. 인위적 조작을 최소화 해 정신성을 극대화 한 일본 모노하(物派)운동을 이끈 이우환의 업적을 재조명한 자리다.
한국작가 이우환이 유럽과 중국, 미국까지 세 대륙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이우환은 백남준과 더불어 세계화에 성공한 대표적 한국작가로 꼽힌다. 작가별 랭킹을 매기는 유럽의 미술전문지 아트팩츠넷에서는 백남준을 필두로 김수자·양혜규와 함께 이우환이 30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우환의 전시가 세계적 권위의 주요 미술관에서 잇달아 열리면서 그의 작품값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화랑과 달리 미술관은 작품거래를 하지 않는 비영리기관이지만 특정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를 개최한다는 것이 ‘미술사적 공인’을 의미하기에 미술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미술관의 영구 소장은 그만큼 ‘가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우환의 연간 경매거래 낙찰총액을 보면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 2011년 거래총액이 반짝 급등했다. 이후 위작논란으로 작품거래가 위축되는 풍파를 겪었으나 ‘단색화’ 열풍과 함께 2014년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에서의 전시, 2016년 러시아 에르미타주미술관, 지난해 영국 미술기관 서펜타인갤러리 전시까지 이어지며 국내외 거래가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이우환의 위상은 ‘제2의 김환기’로 손꼽히는 블루칩이다. 경매 낙찰가는 이미 2012년에 20억원을 넘겼다. 글로벌 미술시장 분석 사이트인 아트넷에 따르면 이우환의 경매 최고가 거래작품은 2012년 11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팔린 1977년작 ‘점으로부터’이며 한화로 약 26억원에 팔렸다. 낙찰가에 수수료를 합한 가격이다. 2014년 11월 소더비 뉴욕에서 팔린 1976년작 ‘선으로부터 no.760219’가 약 25억원으로 2위다. 10위 작품도 18억원 이상이라 작품당 거래가격이 백만 달러 이상인 ‘밀리언달러 작가’에 안착했다. 2010년 일본 나오시마에 이우환미술관이 개관했고 부산시립미술관 내에 이우환 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오는 2022년에는 프랑스 남부 아를 지방에도 이우환 전시장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이우환의 50년 화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획전이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오는 16일까지 열린다. 1970년대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연작과 1990년대 ‘조응’과 최근작 ‘대화’까지 약 20여 점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우환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꼽히지만 의외로 그의 대표작을 시기별로 모두 볼 수 있는 전시는 드물다. 이우환은 서울대 입학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에서 미학자 겸 작가로 활동하면서 프랑스와 일본을 오가며 활동했다. 전시작을 통해 여백의 변화, 타자와의 소통을 강조하는 예술관의 강조를 확인할 수 있다. 목판, 도자화, 테라코타 등 이우환의 희귀작도 만날 수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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