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을 찾아든 북한의 나무배 하나에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귀순을 위한 주도면밀한 항해라고 해도 북방한계선(NLL) 아래로 내려와 57시간이 넘도록 우리 바다에 머물렀음에도 해군과 해양경찰은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현지에 주둔한 육군 부대도 최초의 민간인 신고가 들어오고 55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청와대도 자유롭지 않다. 처음부터 사건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군의 거짓 브리핑에 침묵하고 있다가 일이 커지고 나서야 군에 대한 질타에 나섰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경계 및 대응 작전의 모든 단계가 뚫렸고 책임 전가에만 골몰하는 형국이다. 우리 정부와 군은 경계에서 다섯 번, 군사적 대응에서 한 번, 언론 대응에서 한 번 등 모두 일곱 차례 기회를 놓쳤다. 솔직하게 사태 전말을 밝히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게 최선의 대안으로 보인다.
◇다섯 단계 경계망, 하나도 작동 안돼=북한 어선이 뭍에 닿기 전에 우리 군은 경계 작전에서 여섯 차례나 허점을 드러냈다. 북한 주민 4명을 태운 높이 1.3m, 폭 2.5m, 길이 10m, 1.8톤짜리 어선이 함경북도 경성항을 출항한 게 지난 9일. 이들은 NLL 부근에서 북한 어선단과 어울려 조업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의 감시망을 속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NLL을 넘은 시각이 12일 오후9시께. 이때부터 삼척항에 아무런 제지나 감시를 받지 않고 접안한 게 15일 오전6시20분. 해양경찰은 이들의 존재를 오전6시50분에야 파악했다. 주민 신고를 통해서다.
◇해군 경계망 두 차례 작동 안 해=북한 어선이 NLL을 남하한 뒤 삼척항에 접안하기까지 57시간 20분 동안 아무런 제지도 없었다. 하늘에 떠 있는 해군의 해상초계기(P-3C)가 이를 가장 먼저 포착했어야 한다. 한 번 이륙하면 최대 16시간 동안 체공이 가능한 P-3C는 각종 탐지장비로 해상함정 및 잠수함을 1차 식별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두 번째는 해군의 각종 수상함이 광학 및 수상 레이더로 걸렀어야 하는데 이마저 지나쳤다. 왜 놓쳤는지에 대해서는 군 내부에서도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북한과 화해 분위기 이후 함정 배치 밀도가 낮아져 발견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주장과 마침 성어기를 맞아 NLL에서 부근 조업하는 남북한은 물론 중국 어선들이 많아 평소보다 감시망이 조밀했는데도 놓쳤다는 주장이 동시에 나온다. 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해경 한 번, 육군도 두 번 기회 놓쳤다=NLL 부근을 집중 감시하는 해군이 두 번 놓친 북한 어선은 삼척항에 이르기까지 해양경찰의 검색에도 걸리지 않았다. 먼바다는 해군이, 연안은 해경이 맡는 두 겹의 방어망이 이중으로 뚫린 셈이다. 육군도 미리 알아낼 수 있는 기회를 최소한 두 번 놓쳤다. 첫째, 해안감시 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이다. 군은 ‘당일 파도의 높이가 1.5~2m여서 홀수선(물 밖의 높이)이 1.3m인 선박은 식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해경이 파악한 당일 파도의 높이는 0.5m로 알려졌다.
둘째, 해안경계부대가 제대로 근무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강원도 지역에서 해안경계부대의 소초장을 지냈던 한 예비역 장교는 “북한 선박이 삼척항으로 들어오던 시각이면 소초장이 병력을 이끌고 수제선(水際線·눈에 보이는 수평선과 물과 땅이 닿는 선) 정밀 정찰을 실시해야 할 시간”이라며 “해안선의 대공 의심물 수색에서 수평선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주간 근무의 대부분을 상근예비역에게 돌릴 정도로 병력 부족 현상이 심해져 현역병의 야간 근무 부담이 커진 점도 (경계 소홀의) 요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기회에 ‘육경정 운용에 대해서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육경정은 해안 수색 정찰을 위해 육군의 해안부대가 운영하는 20톤 안팎의 경비정으로 노후화 등으로 교체 또는 해군·해경 이양론이 나오고 있다. 그는 ‘육경정이 아직도 운용된다면 육군은 세 차례나 검색 기회를 놓친 셈’이라고 말했다.
◇대응도 실패, 신고 후 55분 뒤에야 현장 도착=모든 단계에서 구멍이 난 경계처럼 대응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요소로 가득하다. 북한 선박은 삼척항에 접안 후 30분이 지나서야 주민 신고로 존재가 알려졌다. 15일 오후6시50분께 주민 신고를 접수한 해양경찰은 4분 뒤 이를 인근 해군 부대에 알렸다. 오전7시15분에서야 이를 전파받은 지역 육군 부대는 조사관 1명을 현장을 내보냈다. 조사관이 현장에 출동한 시간이 7시35분. 이때는 이미 해경이 북한 선박을 인양하고 있을 때였다. 해당 부대의 초기 대응 부대는 구형 2와2분의1 트럭을 타고 7시45분에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이동하는 데 10분이 걸렸다고 하지만 주민이 최고로 신고한 시점으로부터 55분이 걸렸다면 심각한 문제다.
육군의 한 예비역 장성은 “연대급 부대에서 운용하는 5분 대기조의 가장 큰 임무는 신속 출동이고 신속 출동의 최대 목적은 적의 분산과 이동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간첩 작전에서 55분이 걸렸다면 적은 분산한 채 해당 부대의 작전 반경을 벗어났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그 정도 시간이라면 나머지 출동 가능 부대를 모아 제2 포위망, 제3 포위망을 순차적으로 구축하고 인근 부대 전파까지 마쳤어야 한다”며 “최고 신고 후 육군의 작전 부대까지 전파되는 시간이 지연된 경위를 먼저 규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언론 브리핑, 은폐 시도?=국방부와 합참의 사후 대응은 오히려 의혹만 부추겼다. 17일 언론 브리핑에서 군의 설명은 모두 미흡하거나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사후에 드러났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사과하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되레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처음부터 허위 보고와 은폐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다. 더욱이 국방부 기자설명회에 청와대 행정관(해군 대령)이 이례적으로 몇 차례 참석했다는 점이 알려지며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경계하지 못한 부분이나 국민께 제대로 알리지 못한 부분에 문제점이 없는지 철저히 점검해주기 바란다”고 국방장관에게 지시했어도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청와대가 사건 당일 모든 걸 보고받고도 군의 왜곡 브리핑에 일언반구도 없다가 문제가 커지자 마치 국방부와 군의 책임으로 넘기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북한과 대화 분위기를 우선시하는 청와대가 처음부터 지침을 준 것 아니면 청와대를 의식해 군이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의구심도 고개를 들고 있다.
◇남은 과제는=청와대와 군이 사태를 엄중하게 본다면 보다 솔직해져야 한다. 먼저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 대한 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해군의 작전 개념이 고속 간첩선 혹은 잠수함 침투를 막는 것이며 소형 목선을 잡는 것은 주요 업무의 바깥이라는 점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했으면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사안을 애써서 키운 꼴이다. 불편하거나 잘못한 점이 있으면 일단 감추고 보는 군의 오래된 습성이 반복되며 국민의 불신만 커졌다.
hongw@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