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검찰이 몰수 확정 판결이 난 암호화폐를 국고에 귀속하거나 확정 판결 전 압수한 암호화폐를 매각해 현금으로 보관한 경우는 지금껏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암호화폐는 일선 청이 보관만 하고 있다. 게다가 검찰은 신종 형태의 압수물을 어떻게 국고화할 것인지에 대해 관계부처와 합동 연구를 진행하지도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압류품은 통상적으로 수개월 내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자산처분 시스템인 ‘온비드’ 등을 통해 공매 절차를 밟는다. 증서 형태라도 띤 주식·채권과 달리 암호화폐는 실물이 없어 법무부나 대검찰청 차원에서 매각대금 확보 근거와 방법을 미리 연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진작부터 높았다.
검찰이 암호화폐 몰수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 대법원의 첫 확정 판결이 나오면서부터다. 대법원은 당시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기소된 안모씨 상고심에서 191비트코인 몰수 등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실제로 검찰은 대법원 판결 이후 압수·계좌동결 형식으로 암호화폐 범죄수익을 적극 거둬들였다. 검찰이 그간 몰수한 암호화폐는 시가 기준 최소 수백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진단이다. 대검찰청 서민다중피해범죄대응TF는 지난달에도 대구지검 안동지청이 시세 조종으로 고객들로부터 예치금 56억원 상당을 편취한 거래소 운영자의 암호화폐를 압수 조치했다며 성과를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몰수만 한 채 국고화 작업에는 시동을 걸지 않으면서 정부의 거래소 폐쇄 조치 등으로 범죄수익이 가상의 공간에서 증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사소송법 132조는 현저한 가치 감소의 염려가 있거나 보관하기 어려운 압수물은 매각해 대가를 보관할 수 있게 한다. 또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국고에 귀속된 금액에 한해서만 범죄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게 한다.
현재 암호화폐의 범죄수익에 대한 국고 귀속 작업을 맡은 곳은 대검찰청의 범죄수익환수과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암호화폐를 통화로 인정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의 부정적인 시각과 대법원 판결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탓으로 풀이했다. 검찰총장 교체기와 인사 시즌이 맞물리면서 실무진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관계자는 “정부의 부정적인 시각이 유지되는 한 검찰이 암호화폐 국고화를 서두를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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