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은 1932년생인 백남준(1932~2006)의 87번째 생일이다. 생전의 백남준은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 성격의 글에서 “11932년에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나는 십만 살이 될 것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으로 백 년 후부터 십만 년 후까지 내다봤지만 정작 그는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이뤄낸 작가답게 평소 백남준은 줄기세포 등 과학을 통한 생명연장에 대한 관심이 컸지만 막상 작품활동에 몰두하느라 운동 등 건강관리에는 소홀했다. 예상이 들어맞은 것은 그의 작품과 예술관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백남준 탄생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마련됐다. 백남준의 최대규모 작품이나 불 꺼진 채 해를 넘긴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 복원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도 ‘생일선물’ 못지않은 희소식이다.
◇해피버스데이, 백남준=경기도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는 20일 3가지의 참여형 퍼포먼스를 연다.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 미술관 1층에서 이소요 작가가 진행하는 ‘식물과 함께 숨을’은 백남준의 대표작 ‘TV정원’을 향해 참가자 60명이 생일케이크의 촛불을 끄듯이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퍼포먼스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에너지원으로 산소를 배출하고 인간은 산소를 들이마시고 살아가는 공생에 대한 백남준의 생태학적 이해를 반영한 작업이다.
이어 박승순 작가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인 뉴로스케이프(Neuroscape)를 이용해 도시와 자연의 풍경 이미지에 적합한 소리를 실시간으로 자동 추출하는 전자음악 공연 ‘상상적 소리풍경’를 펼친다. ‘생일잔치’의 하이라이트는 이날 3시부터 생일축하 인사를 녹음해 하늘로 보내는 ‘백남준에게 보내는 인사’ 퍼포먼스다. 원래 이것은 백남준과 동시대에 활동한 작곡가 겸 연주자 벤 패터슨(1934~2016)이 지난 2010년 백남준의 생일 날 선보인 퍼포먼스다. 패터슨은 1960년 독일 쾰른에서 펼쳐진 백남준의 파격 공연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을 관람한 후 교류를 이어왔다.
그는 작고 직전 이 퍼포먼스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했고 올해는 한국작가 박승원이 재연한다. 그간 백남준아트센터는 여름 기획전을 7월20일에 맞춰 개막하는 것으로 백남준의 생일행사를 겸했지만 올해는 특별전 ‘생태감각’을 이달 초 개막하고 ‘참여형 생일파티’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를 기획한 박상애 큐레이터는 “지난해 개관 10주년을 맞아 미술관의 공유지 개념을 강조했고, 백남준이 추구했던 모두에게 활짝 열린 예술을 지향하며 올해는 미술관을 찾아오는 인근 지역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개념으로 생일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종로구 창신동의 백남준기념관에서는 새 전시가 개막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운영하는 이 기념관은 백남준이 유년기를 보낸 ‘큰 대문집’ 터의 대문자리 가옥을 고쳐 만든 곳이다. 20일 개막하는 ‘석가산(石假山)의 액션뮤직’전은 백남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현재와의 연결점을 찾아내 꾸렸다는 점이 특징이다. 백남준의 이종사촌 누나들이 옛 기억을 더듬어 그린 옛집의 그림에는 돌과 바위로 조성한 인공정원인 ‘석가산’이 대문 근처에 등장한다. 요즘은 아파트단지 내 조경으로 석가산이 쓰이니 당시 백남준의 집이 어떤 규모였는지 짐작케 한다.
백남준이 1996년 뇌졸중에서 깨어난 직후 유치원 친구인 수필가 이경희에게 선물한 73개의 콜라쥬 묶음도 선보인다. 백남준과 20년을 함께 한 테크니션 이정성은 ‘텔레비전 아트’를 주제로 백남준의 비디오조각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서울익스프레스는 움직임과 음악, Dydsu(조용훈)+DJ Yesyes(박다함)는 이주민 공동체를 주제로 음악 작업을 펼친다.
◇헬로!다다익선=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중앙홀에 자리 잡은 백남준의 1988년작 ‘다다익선’은 1,003개의 TV모니터로 이뤄진 작가의 최대규모 작품이자 대표작이다. 지난 2003년의 대대적인 모니터 교체작업을 비롯해 수차례 복원이 진행됐지만 지난해 2월 전격 작동 중단된 상태다. 이 작품의 복원을 두고 고심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은 늦어도 올 하반기에는 향후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다다익선’이 불 꺼진 채 방치된 것을 두고 갖은 비판과 민원이 따르지만 거대한 작품의 복원이 단지 전원만 켠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복원할 경우 구형 브라운관 모니터를 그대로 쓸지, LCD 등 다른 형식을 적용할지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올해 초 복원해 전시한 백남준의 대형 비디오월 작품 ‘세기말’은 재가동까지 7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다익선’의 보존을 위해 백남준아트센터를 비롯한 미디어아트 전문기관인 ZKM과 미국 휘트니미술관·LA현대미술관(LACMA)·뉴욕근현대미술관(MoMA)·스미소니언미술관, 영국 테이트 등 해외기관의 작품 보존 사례를 조사하고 국내외 백남준 연구자들의 자문을 구하는 중이다. 강승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9월 중에 그간의 진행사항을 중간발표 성격으로 공유할 것”이라며 “해외 그 어떤 기관도 ‘다다익선’만큼 큰 구조물은 없고 향후 운영관리까지 두루 고려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선의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작품 설치에 관여했고 작가로부터 관리를 위임받은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는 “백남준 선생이 생전에 모니터와 부품 노후화를 예견했고 당대의 최신기술을 접목해 교체하라는 얘기도 했었다”고 밝혔고, 구조물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 김원은 “브라운관 복원, 평면모니터로 교체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만 휘어진 화면이 묘미이니 곡면형 폴더블 모니터를 붙이는 것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다다익선’의 복원과 관련해 별도의 예산을 편성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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