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전세 계약을 연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로또 아파트가 쏟아질 것으로 보이자 전세로 살다가 새 아파트를 분양받겠다는 세입자들이 적지 않습니다.”(강남구 대치동 I공인 대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전세시장이 심상치 않다. 일명 로또 아파트를 기대하고 전세로 눌러앉겠다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한국감정원 주간 조사에서도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5주 연속 상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 사례를 볼 때 분양가상한제 시행이 아파트 값을 일시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으나 전세가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본지가 한국감정원 통계를 분석한 결과 과거 상한제가 시행된 지난 2007년 9월부터 2014년 말까지 약 7년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2.18% 올랐지만 전세가는 무려 48.28%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가 추진 중인 수도권 30만가구 공급이 변수지만 분양가상한제가 전세가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과거 상한제 적용 때 보니=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된 때는 2007년 9월부터 2014년 말까지다. 한국감정원 자료를 토대로 이 기간의 가격 동향을 분석한 결과 아파트 전세가 상승은 뚜렷했다. 이 기간 누적 전세가는 전국은 52.43%, 서울은 48.28% 상승했다. 특히 서울은 7년간 아파트 값이 2%대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에 비춰볼 때 전세가는 폭등한 것이다.
연도별로 봐도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2008년 금융위기를 제외하고 계속 상승했다. 2011년에는 아파트 전세가가 전국은 15.38%, 서울은 12.96% 올라 폭등에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주택시장이 가장 침체된 2012년에도 전세가는 올랐다. 2012년은 주택 거래량이 크게 줄면서 부동산 시장 침체의 골이 매우 깊었던 때다. 감정원 통계를 보면 당시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6.65%의 변동률을 기록했다. 반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0.02% 올랐다.
전세가 상승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에서도 확인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상한제가 시행된 2007년에 35.35%를 기록했다. 이후 매해 늘어나면서 2012년에는 52.61%, 2014년 63.97%, 2015년 70.92%까지 상승했다. 2015년에는 껑충 뛴 전세가율에 갭 투자 열풍이 일기도 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7년 이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생변수가 컸지만 현재도 경기 하강 등 요건이 유사하다”면서 “분양가상한제와 함께 부동산 경기도 약화되면 시장에서 구입 시기를 뒤로 미루는 등 전세시장에 변동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 상한제, 이번에도 전세 자극=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상한제가 시행될 경우 전셋값을 자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집값이 오르겠다는 기대감이 줄어들면서 실수요자들이 매입을 미루고 전세로 눌러앉을 것으로 전망한다. 서울 등 매매 선호가 높은 지역은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화될 것으로 분석했다.
두 연구위원은 “분양가상한제의 주요 타깃인 강남권 재건축의 경우 분양가 하락이 기존 청약 대기자에게는 엄청난 기회”라면서 “당연히 기존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전세로 기다리며 기회를 극대화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공급량이 줄고, 결국 전월세 물량도 감소하기 마련”이라며 “결과적으로 전세가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2019년 4만2,808가구를 정점으로 오는 2020년 2만451가구, 2021년에는 1만963가구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적으로도 2019년 39만6,327가구, 2020년 32만3,098가구, 2021년 21만1,706가구로 감소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정부가 상한제 시행과 더불어 전월세상한제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회에 계류 중인 전월세상한제는 임대료 인상을 5% 이내로 제한하고, 계약 갱신을 2회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주요 골자다.
물론 전세 가격이 안정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임대사업자등록으로 이미 전세시장이 안정돼 있고 오히려 강남권은 정비사업이 막혔기 때문에 이주 수요가 줄어 전세 가격이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상한제 시행이 서울 아파트 값을 안정시킬 수는 있어도 풍선효과로 지방 등 다른 지역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상한제가 시행된 7년 동안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2.18% 올랐지만 전국 아파트값은 20.31% 올랐다.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아울러 서울 아파트 매매가도 다시 회복했다. 통계를 보면 2014년 1.99% 상승한 데 이어 2015년에는 6.71%, 2016년 3.25% 올랐다.
/이재명·권혁준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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