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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27> '양제' 사라지고 '일국'만 남은 홍콩...내년 엔드게임 맞을수도

■수명 다한 中 '일국양제' 약속

홍콩반환때 50년 자치 보장했지만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 어기는 등

中, 시진핑정부 들어 지배권 강화

불황 이어지며 대규모 시위 촉발

경제종속 심화...'중국화' 막긴 역부족

대만인들도 '평화통일' 기대 접어

여론조사서 89%가 일국양제 반대

중국의 홍콩 지배기구 ‘홍콩 주재 중국 연락사무소’에 걸린 국가휘장이 지난달 21일 반중 시위대의 검은 페이트 공격으로 훼손돼 있다. /EPA연합뉴스




# “홍콩 시위대가 폭력으로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에 도전하고 있다. 불장난하면 타죽는다.” 6일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의 양광 대변인은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시위 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경고했다. 그는 “외부 세력이 중국의 ‘내정’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양 대변인은 지난달 29일에도 기자들을 불러 “시위대가 일국양제의 최저한계선을 건드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1일 오히려 “중국이 일국양제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홍콩은 일국양제의 실패한 모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같은 일국양제 개념을 동원해 중국은 홍콩 시위대를, 대만은 중국 정부를 각각 비난하고 있는 셈이다. 대만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은 일국양제의 핵심으로 ‘양제’를 가리키는 반면 중국은 ‘일국’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10주째로 접어든 홍콩사태가 유혈충돌과 총파업으로 비화하면서 중국의 일국양제 실험이 시험대에 올랐다. 홍콩의 대규모 송환법 시위를 계기로 통치과정에서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중국이 지난 1997년 당시 영국으로부터 홍콩 주권을 반환받을 때 이용한 일국양제 논리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홍콩 반환 당시 양제를 내세워 홍콩에 ‘고도의 자치’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던 중국은 이제 일국을 강조하면서 홍콩의 자치권을 무시하고 있다. 홍콩이 중국화하는 모습에 대만인들은 중국의 양안(중국과 대만) 통일전술인 일국양제에 따른 ‘평화통일’ 기대를 접었다. 중국 정부의 ‘아전인수’식 일국양제 해석으로 홍콩인들은 물론 대만인들의 마음도 중국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은 홍콩 시위대가 일국양제를 위반했다고 연일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는 홍콩의 주권이 이미 중국에 있기 때문에 홍콩 주민들도 중국의 지시와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됐다. 중국이 국가휘장이나 오성홍기의 훼손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콩인들도 일국양제를 주장한다. 다만 이는 홍콩의 자치권과 시민들의 민주적 권리가 보장된다는 전제에서다. 홍콩인들에게 자치권을 위협하는 중국은 ‘나쁜 외세’일 따름이다.

이것이 홍콩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다. 과거 홍콩을 통치하던 영국 역시 양제에 주안점을 두면서 중국을 비난하고 있다. 일국양제는 ‘일국가 양제도(一國家 兩制度)’의 줄임말이다. 즉 ‘한 국가에 속하되 두 가지 제도를 적용한다’는 의미다.

일국양제가 처음 제기된 것은 1970년대 말이다. 당시에는 대만과의 통일방식으로 처음 거론됐다. 즉 대만과 하나의 중국으로 통일하는 대신 각기 다른 제도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대만은 자본주의를 유지하되 주권은 중국 본토 정부에 귀속된다는 것이 중국에서 제기한 일국양제 논리였다. 대만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일국양제 구상이 다시 떠오른 것은 1980년대 홍콩 반환과정에서다. 영국으로서는 홍콩을 중국에 돌려주는 대신 홍콩인이나 다른 나라의 비난을 회피할 핑곗거리가 필요했는데, 일국양제는 영국의 부담을 덜기에 안성맞춤이었다. 1984년 영국과 중국은 ‘중영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1997년부터 홍콩을 중국의 주권하에 놓는 대신 일국양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내용인즉, 홍콩이 50년 동안 기존 제도를 유지하면서 고도의 자치를 누린다는 것이다. 중국은 홍콩의 주권을 얻고, 홍콩인은 예전과 같은 제도하에 생활할 수 있으며, 영국은 홍콩을 공산 중국에 방기했다는 비난을 피했다. 일단은 모두가 만족했다. 일국양제 개념을 정립한 덩샤오핑은 1984년 “일국양제에 기반한 홍콩 관리는 향후 50년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고 50년 후 변화한 대륙은 홍콩 문제를 옹졸하게 처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국양제는 누가 봐도 모순된 개념이다. 일국양제를 주도하는 일국이 양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환 이후 영국은 홍콩 상황에 개입할 명분이 없어졌고 홍콩인의 저항도 중국의 국내 문제가 됐다. 홍콩에서 일국양제가 끝나는 오는 2047년 이후에는 어떻게 할지도 쟁점이다.



1997년 홍콩이 반환된 후 중국은 상당 기간 일국양제의 원래 취지를 살려 홍콩의 자치권을 보장했다. 당시는 중국이 아직 개혁개방 초기였고 경제성장에 매진해야 할 때라 성숙한 자본주의 지역인 홍콩을 직접 통치하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잘못 건드렸다가 금융 중심지인 홍콩을 망가뜨릴 위험도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중국의 영향력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홍콩의 2대 권력기구인 행정장관과 입법회는 둘 다 친중파 인사들로 채워졌다. 행정장관 선임은 선출위원회를 구성해 뽑는 간선방식인데, 결국 중국이 승인하는 인물이 행정장관에 올랐다. 초대 둥젠화부터 현재의 캐리 람까지 역대 행정장관들은 하나같이 중국의 꼭두각시라는 오명을 들었다. 입법회는 총 70석을 직능대표와 지역대표 두 방식으로 반반씩 뽑는데, 재계나 단체 인사들인 직능대표는 친중파가 많았다. 지역대표만이 홍콩의 바닥 민심을 대변할 수 있었지만 여기에도 점점 친중파 엘리트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홍콩 반환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장쩌민 시대에 보장된 홍콩 자치권은 후진타오 정부 들어 점차 훼손됐다. 2003년 보안법 반대시위가 분기점이다. 당시 둥젠화 행정장관이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보안법을 만들려고 하자 시민들이 이에 반대하면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보안법 입법은 결국 무산됐지만 홍콩 시민사회의 성장에 두려움을 느낀 중국은 홍콩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했다. 홍콩 주재 연락사무소를 이용해 홍콩 정부를 배후조종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에는 행정장관 직선과 직능대표 폐지를 요구하는 ‘두 개의 보통선거’ 요구 시위가 벌어졌다. 중국은 이를 거부하면서 시위를 진압했다. 이후 반환 20년이 지난 2017년에는 행정장관직선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중국은 이 역시 지키지 않았다.

홍콩의 자치권이 결정적으로 부인되는 것은 시진핑 정부 들어서다. 중국 정부는 2014년 6월 ‘홍콩 백서’를 발간하면서 중국 중앙정부의 우위를 재차 확인하고 홍콩 정부의 자치권은 제한했다. 홍콩 내 친중파 거물들을 회유하고 반대파는 철저히 탄압했다. 이에 저항해 일어난 것이 같은 해 9월의 이른바 ‘우산혁명’이다. 중국 정부가 당초 약속했던 행정장관 직선제를 거부한 데 대해 대학생을 중심으로 시민들은 79일간 대규모 시위를 이어갔다. 하지만 결국 직선제 관철에는 실패했다. 이제 홍콩은 완전히 중국 일국에 속했고 양제는 이름만 남았다.

연이은 대중운동의 실패와 정치력 열세로 홍콩 시민사회는 기반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중국에 점차 동화되면서 홍콩 경제가 침체되는 상황은 다시 밑바닥 홍콩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3월 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대규모 시위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 3일 송한법 반대 시위 도중에 한 홍콩인이 중국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과거 영국 통치아래 사용되던 홍콩깃발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미중 무역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홍콩 경제는 2·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6%에 그칠 정도로 정체됐다. 당초 전문가 예상치인 1.5% 성장에서 반토막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경기악화에 따른 불만은 중국으로 향했다. 현재 홍콩 인구 748만명 가운데 중국인은 10%에 육박한다. 이들 중국인이 점차 홍콩의 좋은 일자리와 지위를 차지하면서 기존 홍콩인을 ‘2등시민’으로 몰아냈다는 것이다. 집값과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홍콩의 기득권층만 이익을 차지하는 가운데 특히 젊은이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기획기사에서 홍콩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돈도 없고, 아파트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다”는 말로 정리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시위사태로도 홍콩의 중국화를 막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미 홍콩 경제는 중국 경제에 말려 들어갔고 홍콩인들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홍콩 민주주의의 중국 내 침투를 두려워하는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인에게 자치권을 되돌려줄 리도 만무하다. 홍콩인 입장에서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냥 살거나 외국으로 떠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청년들의 불만과 절망이 너무 커 최근 시위사태는 상당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앨버트 청 SCMP 칼럼니스트는 “중국이나 홍콩 시민 누구도 일국양제가 2047년까지 유지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지금과 같은 불안정이 계속되면 아마 내년에 ‘엔드게임’을 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홍콩에서의 일국양제 실패는 중국·대만과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던 일부 대만인들도 최근의 홍콩사태를 보면서 ‘일국양제’를 통한 통일 가능성을 접고 있기 때문이다. 1일 대만의 중국담당 부처인 대만대륙위원회는 지난달 25~2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대만인 중 88.7%가 중국의 일국양제에 반대한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무력위협과 경제제재를 강화하면서 대만의 이탈을 막으려 하고 있다.

/베이징특파원 chsm@sedaily.com

지난 3일 송환법 반대 시위의 상징인 검은색 옷을 입은 한 홍콩인이 ‘자유 홍콩’이라는 글자아래를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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