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일본에 ‘대화의 문’을 열라고 촉구했다.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언급을 피하고 일본과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강조하면서 한일갈등 해소 의지를 명확히 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내년 일본에서 개최될 도쿄올림픽을 ‘공동 번영을 위한 기회’라고까지 평가하며 동아시아에서 한일 간의 우호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이 ‘평화의 길’을 찾고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제시함으로써 일본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일본에 이처럼 유화적인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더 이상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되겠다며 극일(克日) 의지를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겠다는 기존의 ‘투트랙 전략’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일본과 안보·경제협력을 지속해왔다”며 “일본과 함께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하고자 했고 역사를 거울삼아 굳건히 손잡자는 입장을 견지해왔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동반자’로서 일본을 지목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일본이 이웃 나라에 불행을 줬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기를 우리는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며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복절 이후 한일 간의 외교적 교섭을 염두에 두고 대일 메시지 수위를 조절하는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특히 평창동계올림픽·도쿄하계올림픽·베이징동계올림픽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이 이 지역의 우호와 협력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보복조치 이후 여권 일각에서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나오는 와중에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봤듯이 도쿄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다만 일본의 부당한 보복조치를 다시금 지적하면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자강의 메시지도 강력하게 전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문 대통령은 △책임 있는 경제강국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는 교량국가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평화경제를 화두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에서 주권이 확고할 때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으로 흔들리지 않는다”면서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 우리는 책임 있는 경제강국을 향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소재·부품 산업 독립과 관련한 국내 일각의 회의론을 의식한 듯 “우리의 부족함을 성찰하면서도 스스로 비하하지 않고 함께 격려해나갈 때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우리가 힘을 가지면 대륙과 해양을 잇는 나라,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며 ‘교량국가’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지정학적 위치를 우리의 강점으로 바꿔야 한다. 더 이상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도해나간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구현하기 위한 신북방·신남방정책의 중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경협을 바탕으로 한 평화경제 역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어갈 동력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의 역량을 합친다면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8,000만 단일시장을 만들 수 있다”며 “한반도가 통일까지 된다면 세계 경제 6위권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남북경협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는 “북한을 일방적으로 돕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남북 상호 간 이익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며 함께 잘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늦어도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 된 나라(One Korea)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단단히 다지겠다고 약속한다”고 역설했다. 광복 100주년을 맞는 2045년에 ‘통일 한국’을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이 이날 처음으로 제시된 것이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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