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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다다익선' 원형 그대로…2022년 다시 켠다

"비디오아트 상징…신기술 적용 신중"

국립현대미술관, 브라운관 유지 결정

상부 소형모니터엔 LED 부분 도입

원본성 유지 '안전한 결론' 평가 속

"현실적이지 못한 임시방편" 지적도

지난 2015년 총 1,003대의 모니터 중 고장난 320대를 수리·복원한 후 재가동된 ‘다다익선’ 모습. 하지만 지난해 2월 상단부 누전현상 발견으로 화재 위험이 우려되면서 다시 가동이 중단됐다./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 남궁선




모니터 노후화로 지난해 2월부터 가동 중단됐던 백남준(1932~2006)의 ‘다다익선’이 오는 2022년에 재가동 된다. 복원 방식은 1988년 설치 당시의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그대로 사용하는 ‘원형 유지’로 가닥이 잡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1일 서울관 세미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의 브라운관(Cathode-Ray Tube·CRT) 모니터가 탑재된 원형 유지를 기본 방향으로 보존한다”는 방향성과 함께 “2022년 전시 재개를 목표로 3개년 복원 프로젝트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미술관은 CRT 신기술 개발과 모니터 확보 등에 30억원의 예산을 계획하고 있다.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최대작=‘다다익선’은 백남준이 지난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원형홀에 설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비디오 설치작품이다. 10월 3일 개천절을 뜻하는 1,003개의 모니터로 이뤄진 탑 형식의 작품으로 높이 18.5m, 지름 11m에 무게만 16t에 달한다. 작품을 넘어 건물에 가까운 규모라 외형은 건축가 김원이 설계했고, 모니터 설치는 엔지니어 이정성이 담당했다. ‘비디오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백남준은 1987년 제작 당시 “모니터의 수명은 정확한 근거가 없으나 7만 시간 이상이고 1일 8시간 사용하면 수명은 약 10년간 된다. 그러므로 10년 후에는 모니터 1,003대 전량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백남준은 건축가 김원에게 “철 구조물 설치 시 모니터를 놓은 채 애프터서비스(AS)가 될 수 있도록 하며 PC보드(내부회로)를 몽땅 빼내서 교체가 가능하도록 프레임 설계가 되게 해줄 것”을 당부했고, 이정성에게는 팩스를 보내 “애프터서비스(AS)에 관한 전권을 일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의 예상보다 작품은 오래 버텼다. 제작 12년 후인 2000년부터 미작동 TV에 대한 복원논의가 시작됐고 2003년에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아 모니터가 전면 교체됐다. 다만 원래의 검은색 TV박스가 ‘생산중단’ 등의 이유로 은색으로 바뀌었다. 이후 간간이 미작동 TV가 생겼으나 그럴 때마다 부분수리가 진행됐다. 2012년에는 ‘다다익선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가 열려 세계 미술계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당시 중론은 외형을 유지하되, 신기술 접근은 긍정적이나 적용에는 신중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후 2015년에 모니터 320대를 교체하는 대규모 수리가 있었지만 2년 8개월 만인 지난해 2월 상단부 누전현상이 발생했다. 미술관은 화재 위험을 우려해 작품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백남준이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원형홀에서 ‘다다익선’ 설치를 구상 중이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브라운관 작품은 시대의 산물=국립현대미술관은 불 꺼진 ‘다다익선’을 두고 2년 가까이 고민했다. 계속 상영할 수 있을지 전기 안전진단을 우선 실시했고 작동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다익선’의 복원에 대한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컸고, 향후 백남준 미디어아트 복원의 대표사례가 될 수 있기에 신중했다. CRT모니터를 최대한 복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도출한 미술관 측은 “작품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시대성을 반영하며 ‘다다익선’의 CRT 모니터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미디어 매체로 미래에 20세기를 기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CRT 모니터가 전 세계적으로 ‘생산중단’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독일 등 일부 지역에서 CRT 재생기술을 보유한 곳이 있다고는 하나, 당장 10년 뒤를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새 기술을 적용하더라도 안정적인 가동이 불가능한 작품 상부의 6인치 소형 모니터 등은 LED나 마이크로LED 등 최신 기술을 부분적으로 도입해 ‘혼용’하기로 했다.

미술관은 복원 방향을 세우기 앞서 40명의 미디어아트 전문가 자문을 구했다. 이 중 과반인 23명이 ‘모니터 교체’를 제언했고, 현재의 CRT 모니터를 유지하자는 의견은 12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RT 유지를 결정한 것에 대해 박미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LED 모니터의 장점이 있지만 브라운관의 곡면과 달리 평면화면의 시야각 확보가 어려워, 지금처럼 어느 각도에서나 영상을 밝게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단점”과 함께 “화면의 4:3 비율을 현재로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이와 함께 미술관 측은 독일 쿤스트팔라스트 뒤셀도르프가 소장한 ‘하늘을 나는 물고기’, 휘트니미술관이 소장한 ‘세기말’, 뉴욕근현대미술관(MoMA)의 1993년작 ‘무제’ 등의 작품이 CRT 재생복원 및 수리를 적용했다는 선례를 들었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모니터가 많아야 200여대인 작품들이라 규모 면에서 ‘다다익선’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휘트니미술관은 207대 짜리 ‘세기말’ 복원에 8년여 시간을 투입했지만 우리는 1,003대짜리 작품 복원에 3년 정도를 들인다는 계획도 무리한 측면이 없지 않다.



백남준의 1988년작 ‘다다익선’의 현재모습. 1,003대의 모니터는 꺼진 상태이고 미술관 측은 작품 제작과정을 ‘다다익선 이야기’라는 전시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영구 대책 아닌 임시 방편=국립현대미술관이 내놓은 ‘다다익선’의 복원계획은 ‘원본성’을 강조한,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안전한 결론이라 평가된다. 그렇다고 모든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일단 백남준 자신이 작품의 외형을 신기술 매체로 대체하는 것에 개방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인 영상이미지라는 뜻이다. 백남준은 2003년의 복원에서 모니터가 검은색에서 은색으로 바뀐 것에도 이견을 드러내지 않았고 “어디에다 켜도 괜찮다”고도 했다. 김남수 전 백남준아트센터 연구원은 “백남준은 네오아방가르드 진영을 거치면서 현대미술의 원본성을 강조하는 입장 및 그러한 가치관념에서 자유로웠다”면서 “진보된 광학적 물리학을 바탕으로 첨단 매체로 교체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개방하고 확장하는 것이 백남준의 진취적인 정신에 걸맞다”는 의견을 전했다.

탑 모양의 전체적인 형태는 유지하되 모니터를 바꾸자고 주장하는 쪽도 작가의 예술관, 잦은 교체 없는 향후 지속성을 우선시 한다.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인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은 “프레임 자체가 갖는 시각성을 유지하면서 현대적 LED·LCD 평면 모니터로 교체하고 새로운 디스플레이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과거 원형 복구보다 상책이라 본다”고 했고, 작품 제작에 참여한 김원 건축가는 “현재 개발된 기술 중 얇은 패널을 붙여서 사용할 수 있는 OLED를 사용하는 것 등 외형을 유지한 채 신기술을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정성 엔지니어는 “CRT를 고쳐서 쓴다는 데 이의는 없으나 수리·교체하지 않은 모니터로 인해 또다시 수리·공사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서 장기적인 대책이 아님을 지적했다. 잦은 교체와 수리로 인해 미술관을 이용하는 관람객들에게 불편을 지속적으로 줄 수 있다는 점, 그로 인해 작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뜻이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원본 유지가 이상적이기는 하나 현실적이지 못한 ‘탁상공론’”이라며 “복원 후 또 몇 년 지나지 않아 수리 공사를 거듭할 것을 뻔히 알면서 이같은 결론을 도출한 것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의견에 대해 미술관 측은 “이번 복원 계획이 50년,100년간 지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10만 시간 수명의 CRT를 하루 8시간 가동하면 10~15년간 유지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백남준의 장조카이자 저작권 상속자인 켄 하쿠다와 한국 미술계의 갈등도 미술관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술관 측은 이번 복원계획과 관련해 저작권자에게 공식적으로 연락을 취했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 저작인격권에 해당하는 작품의 수리·보수에 관한 행위는 위법하지 않다는 법률자문을 얻기는 했으나 저작권자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지 못한 것 또한 과감한 신기술 도입을 주저하게 한 요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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