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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커튼 드리웠던 화가의 삶에 환희가...

■하인두 30주기 회고전·아내 류민자 '부부展' 열려

국기보안법 고초 겪은 하인두

제자였던 아내 만나 '제2인생'

옵아트 재해석해 오방색 구현

류민자도 비슷한 화풍 선보여

류민자 ‘물뫼리’ /사진제공=가나아트센터




수년 만에 만난 친구가 찾아와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그러라 했다. 월남한 친구였다. 간첩으로 몰린 인물이라는 것은 나중에, 새벽에 들이닥친 경찰에게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 혐의로 끌려갈 때서야 알았다. 1960년을 전후로, 반공정신이 민주주의를 압도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2년간 옥살이를 했다.

억울한 천재, 아직도 제대로 빛 보지 못한 서양화가 하인두(1930~1989)의 사연이다. 하인두 작고 30주년 회고전을 겸해 아내인 동양화가 류민자(77)의 개인전이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오는 27일까지 열린다. “검은 커튼”이 드리운 듯 어둡고 “진흙탕 늪”처럼 절망적이던 하인두의 인생에서 제자로 처음 만난 류민자는 ‘한 줄기 빛’이었다. 서양화가 남편과 동양화가 아내의 ‘부부전(展)’은 예술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이색적인 ‘사건’이었다.

이들은 1967년에 결혼을 하고 2년 뒤 큰아들을 낳았건만, 국가보안법이 또 하 작가의 발목을 잡아 교사 자리도 잃고 해외 비엔날레며 전시 출품도 할 수가 없게 했다. 서울대 회화과 동기들, 화단의 동료들이 승승장구 할 때 하인두는 속 앓이만 했다. 홧병이 쌓였고 환갑도 못 넘긴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하인두 ‘혼불-빛의 회오리’ /사진제공=가나아트센터


전시장 1층은 하인두의 작품들이다. ‘만다라’와 ‘혼불’ 연작은 현대미술운동 개척의 선구자였던 그가 서구의 옵아트(Optical Art)를 새롭게 재해석해 받아들이고, 우리식 오방색으로 구현한 독창적 작품들이다. 동시대 미술의 경향 위에 불교적 상징 체계를 도입한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그는 늘 “막연한 전위나 실험이 아니라 오리지낼리티(독창성·원본성)가 있는 것, 즉 한국 냄새가 짙은 작품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1층의 하인두 30주년 회고전 전경.


류민자 ‘피안의 세계’ /사진제공=가나아트센터


2층 전시장 전체는 류민자의 그림이 채웠다. 오방색 색채 탓인지 부부의 작품에서 묘한 공통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자연을 간략하게 표현하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면 자칫 장식성으로 빠져들기 쉬우나 오히려 문인화의 기개와 궁중화의 기품이 공존한다. 민화적 화풍과 전통 불화의 요소가 혼재했는데도 정갈하고 경건하다. ‘원로화가의 작품에는 인품이 배어들기 마련’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부부화가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천경자(1924~2015)에게 그림을 배운 류 화백은 꽃과 정물에 몰입했었는데 1970년대에 작업에 대한 고민의 시기를 겪었다. 스승이었다 남편이 된 하인두가 말했다.



“동양화 서양화가 어디 있나. 그저 민자, 너의 그림을 그리는 거야, 너만의 그림. 예술보다 인생이 더 소중한거지. 영글고 참된 인생이 가득하면 그림도 그 속에서 스스로 익어가는 것이다.”

큰 딸을 낳고 급성간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는데 서러운 마음에 “그림도 못 그리고 이렇게 죽게 되는 게 제일 억울하다”고 남편을 붙들고 울었다. 훽 나가버린 남편이 다음 날 와서는 “개인전 할 전시장 잡아놨으니 일어나 그림 그리라”했다. 45년도 더 된 일이 여전히 생생한 류 화백은 “기가 차서 깔깔 웃다가 진정제 맞고 잠들었는데 그러고 깨어나면서부터 그림이 확 달라졌다”며 “마음의 앙금이 터져 나왔고, 불상이 등장하는 식으로 종교적인 분위기가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류민자 ‘청화예원’


류민자 개인전 전시 전경.


류 화백은 생명력 깃든 자연의 리듬감을 색채로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피안’ ‘순환’ ‘정토’ ‘심상’ 등의 작품은 머릿속에서 꿈처럼 만나는 자연이지만 일상에 찌든 이들에게 쉴 곳을 내어 준다. 화가는 최근에 그린 폭 4m의 ‘청화예원’을 가리키며 “우리 남편 잠들어 있는 양평 청내림이 벚꽃 피는 계절이면 장관을 이룬다”며 “남편 보내던 그 해 심은 벚나무가 30년 지나 아름드리가 됐길래 그 모습을 그렸다”고 말했다.

하인두·류민자 부부의 3자녀는 모두 예술가가 됐다. 큰아들 하태웅은 드론 사진작가 겸 영상작가이고, 딸 하태임은 색띠 작업으로 유명한 추상화가, 지난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작가로 선정된 막내 하태범은 설치작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하인두의 대표작 ‘자화상’ ‘혼불’ 등 다수를 소장하고 있지만 개인전·회고전은 한 번도 연 적 없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제공=가나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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